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시론

[시론] 국가대전환, 민간 활력 제고에서 출발해야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2025년까지 국고·지자체·민간 부문에서 모두 160조원을 투입해 19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한국판 뉴딜’ 구상을 지난 14일 직접 발표했다.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고용사회안전망 강화를 기본 축으로 삼고 있는 이번 구상은 ‘국가대전환 선언’으로 명명됐다. 하지만 말의 성찬이 정책일 수는 없다.

국가대전환 계획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의 한국판이다. 우선 짚어야 할 점은 뉴딜이 성공한 정책이었느냐는 것이다.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대공황 지속기간을 1929∼1932년으로 보고 있지만 이는 증시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증시 호황이 꺾이고 최저점에 도달한 기간이 3년이다. 실제 대공황은 1929년부터 10년간 지속됐으며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비로소 종료됐다. 미국 경제를 구한 것은 ‘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으로 상징되는 뉴딜이 아닌 2차대전이라는 ‘전쟁 특수’였던 것이다. 뉴딜 정책 실패로 도리어 대공황 기간이 길어진 측면이 있다.

‘스무트-할리 관세법’의 패착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뉴욕증시 대폭락에서 발단된 불황으로 세계 각국의 생산은 급감하고 실업은 급증했다. 내수기반이 붕괴되자 미국과 유럽은 수입규제 카드를 꺼냈다. 미국이 선두주자로 나서서 당시 최고 수준인 최고세율 59%의 스무트-할리 관세법을 1930년 통과시켰다. 경쟁적 보호무역주의 연쇄효과로 1929∼1932년 국제무역은 63%나 감소했다. 대공황을 가져온 요인은 시장에 모든 것을 위임한 자유방임 정책이 아닌 시장 질식을 가져온 국제공조 실패였다.

문재인정부 들어 저성장이 구조화되고 있다. 2017년 정권 출범 이래 경제성장률은 내리 3.2%, 2.7%, 2.0%로 주저앉았다. 경제운영을 일신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국가대전환은 필요한 어젠다일 수 있다. 하지만 국가대전환이 구두선일 수는 없다. 발표 내용을 보면 치열한 고민과 숙의가 없어 보인다. 코앞에 닥친 경제적 어려움으로 기존 정책 수단들을 급하게 재배열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뉴딜을 전범으로 한 국가 개입의 한국형 뉴딜이 한국을 대전환시킬 것인가에는 회의적이다.

대전환을 꾀하려면 무엇보다 성장의 장애물에 대한 원인 진단이 필요하다. 국세청의 ‘2020 국세통계’에 따르면 2019년에 자영업자 85만명이 문을 닫았다. 전년 대비 2만2000명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전에 이미 경제는 파탄난 상태인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려 가계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 선순환을 꾀하겠다는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은 돌로 빵을 만들겠다는 정책 유희다.

국가주도형 성장 전략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민간과 정부가 동시에 할 수 있다면 민간이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그레셤 법칙은 재정에도 적용된다. 나쁜 지출이 좋은 지출을 밀어낸다. 정부 지출 증가는 민간 투자와 소비를 밀어내는 ‘구축(驅逐)효과’를 유발한다. 민간과 정부가 일자리 창출 경쟁을 하면 할수록 일자리 질은 나빠지고 재정건전성은 악화된다.

기업가정신이 발휘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구비해야 한다. 기업은 거미줄 같은 규제와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여 있다. 사법 리스크도 기업 경영을 옥죄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은 회계기준 변경에 따른 일회성 평가이익 실현으로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분식이 아님에도 종결되지 않고 있다. 산업 판도가 바뀌어 투자와 구조조정 등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서 총수 공백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결정도 겉돌고 있다.

국가대전환을 꾀하려면 민간 활력 제고가 출발점이어야 한다. 경제에 왕도는 없다. 기업을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자유를 허(許)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