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엽서·수첩… 수집품으로 풀어 낸 역사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 박건호 지음 /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292쪽, 1만8000원

어느 가족이 ‘대한민국 독립 1주년 기념’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독립문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역사 컬렉터’인 저자 박건호는 자신의 수집품 중 시대상이 생생하게 드러나면서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물건을 골라 한국 근현대사를 풀어낸다. 엽서, 편지, 일기 같은 일상의 수집품을 통해 당대의 역사를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제공

책의 첫 장에 나오는 문제부터 풀어보자. 사진의 독립문 상단에 한자로 적힌 ‘대한민국 독립 1주년 기념’은 언제일까. ①1897년 11월 21일 ②1920년 3월 1일 ③1946년 8월 15일 ④1949년 8월 15일 대한민국 독립이라는 말만 보면 퍼뜩 3번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해방 직후 한국인들은 “1945년 8월 15일을 보통 ‘광복’ 혹은 ‘해방’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사진 속 다른 문구에서 유추할 수 있듯 여기서 독립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뜻한다. 저자는 “미군정 3년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홀로 섰다는 의미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썼다. 따라서 정답은 4번.

저자는 첫 장에서 자신이 수집한 1897년 2월 ‘독립문 건립 성금 영수증’을 실마리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독립의 어의(語義)가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한다. 청일전쟁 후 청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해 건립된 독립문이 일제강점기엔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했다가 다시 미군정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굴곡진 역사를 풀어낸다.

이처럼 책은 ‘역사 컬렉터’인 저자가 수집한 물건을 마중물 삼아 한국 근현대사의 14개 장면을 길어 올린다. 수집품에는 손기정의 사인이나 지석영의 ‘아학편’처럼 유명인의 것도 있지만 이름을 듣지 못한 사람들의 평범한 물건이 대부분이다. 1907년 폭도에게 잡혀간 통역관을 찾는 훈령, 1923년 경성자동차 학교에 다니던 식민지 청년이 고향에 보낸 엽서, 1951년 한국전쟁 최전선에서 싸운 소대장의 수첩,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고향에 안부를 전하는 열일곱살 학생의 편지, 1956년 자유당 집권시절 중학생의 일기 같은 것들이다.

미시사나 생활사 서술을 떠올리는 이같은 방식은 평범한 이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역사 교과서와는 다른 차원의 생생함을 전한다. 한국전쟁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한 전북 김제 출신 차영근의 수첩이 대표적이다. 그는 1951년 3월 2일부터 이듬해 1월 22일까지 깨알 같은 글씨로 기록한 수첩을 남겼다. 그의 수첩을 통해 중공군 참전 이후 고지전으로 변모한 한국전쟁의 비참함과 부친의 죽음에도 가보지 못하는 아들의 슬픔을 느낄 수 있다. 다음은 수첩의 일부다.

“어찌나 인민군이 많이 죽었는지 냄새에 코를 들 수 없다. 호(壕) 속의 사체, 그 위에 앉았다. 아, 인간의 일생 험하다.”(8월 23일) “백부 집 앞을 지나면서 말 한 마디 못하고 편지만 써서 떨어뜨렸다…그 심중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었다.”(12월 17일) “아, 자식이 아니다. 불효자다.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접하고 가지 못한 신세. 나는 한없이 상부(上部)를 원망하였다.”(1월 7일)


수집품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을 추리하듯 엮어내는 저자의 솜씨 또한 흡인력이 있다. ‘10년 후에 다시 만날 동무 1951. 1.5’라고 적힌 흑백 사진 속 주인공들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의 끝에는 낯선 역사적 사실이 놓여 있다. 한국전쟁 1·4 후퇴 다음날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했던 저자는 그 사진이 그보다 10년 전에 촬영됐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고 나서 사진 속 인물들이 일본 육군특별지원병에 지원한 조선 청년들이라고 추정한다. 1938년 시행된 육군특별지원병은 첫해 400명 모집에 2900명이 지원했지만 해마다 경쟁률이 높아져 1943년엔 5330명 모집에 30만3400명이 몰렸다. 저자는 이를 두고 “지원병들이 식민통치체제나 침략전쟁에 기여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해방 이후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시각으로만 그들을 평가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도 있다. 책은 1923년 인기 직업이었던 자동차 운전수를 꿈꾸며 상경한 정읍 출신 김남두의 엽서를 통해 1920년대 세를 확장하던 택시와 인력거의 갈등을 다룬다. 미터기를 단 택시가 영업을 시작하면서 격화된 양측의 갈등이 전국 인력거꾼의 파업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최근 ‘타다’를 둘러싼 논란과 겹쳐진다. 전남 무안공립농장학교에서 발행한 장상기의 귀향 증명서를 다룬 장은 1946년 여름 유행한 콜레라 공포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공포를 능가함을 보여준다.

굵직한 역사 서술과 다른 일상의 번뜩이는 표현 역시 이 책을 읽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자유당 집권기 경기중학생이던 김장환의 다음 일기가 그렇다. “요즘은 전기도 24시간 준다. 그리고 판잣집 철거 문제를 취소했다. 그것뿐이랴. 세금도 잘 안 받는다. 그것은 자유당의 선거운동에 매우 큰 계획인 것 같다. 이러고 보니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에 한 번씩 있었으면 그 얼마나 좋은 그리고 살기 편리한 나라와 도시가 될까.”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