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도 즐길 수 있게… 무용을 말로 해설한다

전문무용지원센터, 음성해설 워크숍

서울 종로구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21일 열린 ‘무용 음성해설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이 안대를 차고 소리에 집중하고 있다. 박수환 제공

‘젖은 손바닥을 다른 손 검지로 툭툭 치면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중략) 기숙사 방, 녹음기에서 소리가 재생되고 있다. 미르코가 정지버튼을 누르고, 릴레 감겨 있는 자기 테이프를 쭈욱 당겨서 가위로 싹둑 자른다.’

21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전문무용지원센터에서 열린 무용음성해설 워크숍에서 이런 음성해설이 흘러나왔다. 화면에는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제작한 배리어프리영화 ‘천국의 속삭임’의 한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워크숍에 참석한 무용인 12인은 강내영 사운드 플렉스 스튜디오 대표와 함께 시각장애인을 위해 영화 속 한 장면을 묘사하는 중이었다.

지금은 영화지만 이들이 음성으로 해설할 최종 목표는 무용 작품이다. 지금까지 여러 예술 분야에서 음성해설을 제공해왔지만 몸짓으로 서사와 감정을 표현하는 무용의 경우 상당한 표현력과 순발력을 요구해 도입이 쉽지 않았다. 워크숍을 기획한 최석규 아시아나우(AsiaNow) 대표는 2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각장애인도 무용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무용수의 몸짓, 표정, 의상의 정보를 낭독할 수 있는 전문가를 육성하고 있다”며 “이번 워크숍으로 무용 분야의 음성해설 방법론을 연구하고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무용 음성해설 입문과정인 ‘장애학의 도전’ 강의가 열렸던 지난 7일 강연장 풍경. 박수환 제공

이날 강연을 맡은 강 대표는 “음성해설의 정점이 무용”이라며 “대사가 없어 가장 고차원의 해설이 필요한데, 무용도 장르에 따라 해설 방식이 다르다. 서사가 담긴 발레를 가장 먼저 학습한 뒤 현대무용과 즉흥춤 순서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서사가 있는 무용 작품의 경우 음성해설이 비교적 쉽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충분한 연구가 뒷받침된다면 음성해설이 가능하다. 이번 워크숍에서 온라인으로 강연한 스코틀랜드의 무용 음성해설가 엠마 제인 맥헨리는 “무용 음성해설의 핵심은 객관적인 사실 해설을 넘어 춤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미학을 공유하는 것”이라며 “그러려면 무용과 신체에 대한 지식, 안무 과정과 안무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학습과정이 길고 어렵다. 강 대표는 “객관적으로 해설할 수 있는 장르부터 주관적인 장르로 나아가야 한다”며 “다큐멘터리-예능-애니메이션-드라마-영화-연극-무용 순으로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공연일지라도 연극과 무용의 음성해설 방식은 다르다. 최 프로듀서는 “연극은 서사 구조나 캐릭터가 분명하지만 무용은 움직임과 이미지 중심이기 때문에 안무가와 무용수에 따라 음성해설이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용 음성해설의 또 다른 특징은 현장성이다. 기존에 제작된 영상에 음성해설을 덧입히는 식이 아니라 진행 중인 공연을 실시간으로 해설한다. 강 대표는 “현장성이 중요해 빠른 판단력이 필요하다. 심지어 리허설마다 세부적인 요소가 달라지는 경우도 많아 계속 수정과 보완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맥헨리는 “무용 음성해설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은 정확성을 위해 중요하다”며 “시각장애인도 공연마다 달라지는 모든 변경 사항을 공유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최 프로듀서는 ‘어렵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무용 음성해설을 시도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용의 문턱이 많이 낮아졌지만 장애인은 예외였다”며 “사회가 변하는 만큼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무용계에도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이 시작됐다”며 “인권에 대한 다양성과 포용성의 관점으로 인식 전환이 시작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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