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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선수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했고
서울시장은 진실이 드러나려는 순간에 배낭을 멨다
최숙현의 죽음 앞에서 철저한 조사를 즉각 지시한 대통령은
박원순의 죽음 앞에서 2주가 지나도록 아무런 말이 없다
이런 침묵은 비겁하다

열 살 최숙현은 수영을 배운 지 2년쯤 된 아이였다. 경북 왜관의 교육문화센터에서 임종구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한동네 살던 임 코치는 최숙현의 아버지를 형님이라 불렀다. 어느 날 형님에게 물었다. “숙현이 수영선수 시키면 힘들 때도 있을 텐데 괜찮겠어요?” 사과를 재배하던 아버지는 답했다. “여기 사과나무 밑에 땅을 함 파봐라. 진흙이 곱재? 유기농법인데, 농부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이렇게 안 된다.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라고, 선수는 코치의 땀방울을 먹고 자라는 기다.”

최숙현은 임 코치가 흘린 땀만큼 쑥쑥 자랐다. 초등 4~6학년 때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따냈다. 2010년 동아수영대회를 임 코치는 기억하고 있다. 그가 입원하는 통에 최숙현은 코치 없이 출전했다. 6학년 아이를 경기장에 보내며 코치는 말했다. “허리까지만. 1등 선수를 절대 앞서지 말고 허리까지만 따라가다 마지막 턴을 하고 추월하는 거야.” 시골 소녀는 정말 그대로 해냈고, 서울 선수들이 휩쓰는 전국 무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수영장이 문 닫는 시간까지 연습하다가 “불 끄고 턴만 몇 번 더하면 안돼요?” 하던 성실함이 아이에게 있었다고 임 코치는 말했다.

최숙현은 무릎부터 명치까지 파워존의 신체기능이 탁월했고, 중학교 선생님이 “운동 말고 공부하지 않을래?” 할 만큼 공부를 잘했고, 국가대표를 목표로 삼았지만 올림픽은 그가 품었던 꿈의 시작에 불과해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뒤 기자가 되겠다는 또 다른 꿈을 꾸었으며, 스포츠 전문기자로 세계 대회 현장에서 선수들의 도전을 전하고 싶어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우리는 최숙현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가 겪은 고통에 분노했지만, 그를 잘 알지 못한다. 극단적 선택을 통해 알리려 했던 진실만이 튀어 나와 우리의 기억을 장악했다. 쌍욕을 듣고 왕따를 당하고 구타에 시달렸던 선수, 그러다 끝내 삶을 포기한 청년, 체육계 병폐를 죽음으로 들춰낸 고발자. 스물두 해는 생애라 하기에 너무나 짧았지만, 폭력·자살·고발 같은 단어로만 남기기엔 그에게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결말 이전의 저런 이야기를 꺼내볼 기회조차 없었다.

후배들이 최근 ‘최숙현의 짧고 슬픈 일대기’를 기사로 쓴 것은 그래서였다. 처참한 진실에 묻혀버린 그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사회적 타살의 비극적 최후를 맞은 젊은이에게 우리가 갖춰야 할 예의 같은 것이었다. 경주, 구미, 칠곡에서 그를 아는 수십 명을 만나 써 내려간 최숙현의 생애에는 그가 죽음으로 말한 진실보다 더 간절히 세상에 알리고 싶어 했을 꿈과 열정이 담겨 있었다.

이 취재를 시작할 무렵 박원순 서울시장이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의 죽음은 스스로 생을 접었다는 사실만 같았다. 젊은 선수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했고, 훌륭해 보였던 정치인은 진실이 드러나려는 순간에 배낭을 멨다. 청년은 진실을 세상에 알릴 길이 없어 고뇌했지만, 시장은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걸 감당할 길이 없어 고뇌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마지막 말은 그래서 달랐다. “그들의 죄를 밝혀 달라”며 떠났고 “모두 안녕” 하고는 갔다.

우리는 박원순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성희롱 사건을 파헤친 인권변호사였고, 시민운동에 획을 그었으며, 소셜디자이너란 영역을 개척하다 시정(市政)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르게 된 이유, 감당하기를 포기한 그 진실에 대해선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진실이 고개를 들려 할 때 일이 터져 규명이 쉽지 않게 됐다. 그의 생애를 가까이서 보아온 쪽에선 진실의 존재를 부정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숙현의 죽음 앞에서 “선수 가혹행위는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구시대 유산”이라며 철저한 조사를 즉각 지시했다. 박원순의 죽음 앞에서는 2주가 지나도록 아무런 말이 없다. 여비서 성추행 역시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구시대 유산일 텐데, “너무 충격적”이란 전언이 전부였다. 이런 침묵은 비겁하다. 대통령은 침묵해도, 우리는 이제 박원순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기록해야 한다. 최숙현의 가려진 삶을 들여다보며 애잔했던 것만큼 박원순의 가려진 진실을 목격하는 일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하고, 그것이 피해를 강요당한 이에게 갖춰야 할 예의다. 두 고인의 명복을 빌며, 두 죽음에 얽힌 진실이 많은 변화를 가져오길 기도한다.

편집국 부국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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