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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석창우 (11) 붓으로 누드크로키 그릴 때쯤 팔에 대한 미련 사라져

수강생 모두 여자라 화장실 문제 생겨, 사정 얘기 듣고 김영자 선생이 도와줘

석창우 화백(왼쪽)이 2009년 서양화가 김영자 선생의 전시회를 찾아 함께 사진을 찍었다. 석 화백은 김 화백으로부터 누드크로키를 배웠다.

도곡 김태정 교수께 예술이론을 수업받던 무렵, 같이 수업을 듣던 수강생의 추천으로 누드크로키 수업을 듣게 됐다. 오주남 선생과 다른 한 명의 수강생과 같이 서양화가 김영자 선생의 누드크로키 수업을 들었다.

처음 누드크로키 수업을 듣던 날은 기억이 생생하다. 찰나에 사람의 몸이 새로운 형상으로 꿈틀거리는 정말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모델의 움직임과 표정에 따라 만물이 표현되는 걸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누드크로키를 배우러 간 자리에서 오 선생과 다른 수강생은 누드모델을 도저히 쳐다볼 수 없어 그림을 그리지 못하겠다고 했다. 결국, 나 혼자 다니게 됐다.

문제는 수강생과 선생님이 모두 여자란 점이었다. 혼자 힘으로 화장실을 가야 하는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 주저하다가 김 선생께 사정을 얘기했더니 자기가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다니라고 하셨다.


크로키는 펜으로 밑그림을 스케치하듯 짧은 시간 안에 특징을 잡아 그려내야 한다. 의수에 붓 대신 연필을 끼웠다. 끝없는 연습의 시간이 시작됐다. 수업 시간엔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작업대는 사용하기 어려웠기에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누드크로키는 모델이 한 자세를 끝내고 다음 자세를 취할 때까지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 갈고리 의수와 발을 이용해 스케치북을 넘기며 그림을 그리려야 했던 난 절반도 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드모델이 자세를 취하는 시간이 3분이었는데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

힘겹게 그림을 그리던 내 모습을 본 김 선생은 모델이 자세를 바꿀 때마다 손수 스케치북을 넘겨주곤 하셨다.

하루는 김 선생이 집에서 스케치북 넘기는 것을 연구해봤다며 스케치북 아래 귀퉁이 끝을 갈고리로 넘길 수 있게 계속 접어 주셨다. 그 덕분에 모델의 자세가 바뀌어도 대충 따라 그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난 김 선생과 다른 수강생들의 배려로 누드크로키에 매진할 수 있었다.

연필과 목탄으로 그리는 서양화 크로키에 익숙해지자 내 특기인 붓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붓 특유의 한 획씩 그리는 기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6년을 매달렸다.

그 무렵 난 종종 낚시하는 꿈을 꿨다. 당시엔 그저 낚시가 그리워 꾸는 꿈이겠거니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꿈의 종류가 달라졌다. 모든 꿈에서 내 두 팔은 멀쩡했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갈망이 꿈을 통해 요동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부터 거짓말처럼 그 꿈들이 사라졌다. 연필로만 해 오던 누드크로키 작품을 화선지에 옮겨 붓으로 그리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사고 후 10여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내가 양팔과 헤어진 것이 운명이라면 의수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숙명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난 늘 말한다. 하나님이 건강한 두 팔을 다시 준대도 안 받겠다고.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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