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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천박한 도시, 고상한 대책?

손병호 논설위원


파리는 빛의 도시로 불린다. 계몽주의 시대(Age of Enlightenment)를 주도한 경험이 있고, 유럽 대도시들 가운데 길에 가스등을 제일 먼저 설치해 밤에도 거리가 밝았다. 글로벌 경제 수도 뉴욕은 ‘잠들지 않는 도시’ 또는 큰 도시란 의미의 ‘빅 애플’로 불린다. 시애틀은 주변에 푸른 물과 숲이 많아 ‘에메랄드 시티’라는 별명이 붙었다. 음악가 출신이 많은 빈은 ‘음악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상징적 건축물 때문에 ‘가우디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예루살렘은 ‘성스러운 도시’, 중립국 스위스의 제네바는 ‘평화의 수도’로 묘사된다. 과거 런던이 산업혁명의 여파로 대기오염이 심해 ‘빅 스모크’로 불린 걸 제외하면 도시를 지칭하는 표현은 이렇듯 대부분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서울을 ‘천박한 도시’로 언급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한강변에 아파트만 즐비해 역사나 문화 얘기는 없고 온통 부동산 얘기만 하기에 천박하다고 한 것이다. 집권당 대표의 수도 폄하 발언이 고약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말이 100% 틀리다고만 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실제 한강변이나 서울 도심의 아파트는 욕망과 부의 상징이 돼 버렸고 그걸 보면서 집값 대신 역사나 문화 얘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표현 시비보다는 오히려 이율배반적인 여권의 개발 철학이 더 거슬린다. 현재 정부와 서울시 등은 아파트 공급 확대를 위해 도심 고밀도 개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강에 인접한 용산 정비창의 용적률을 상향하거나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진짜 그리 추진된다면 ‘한강변에 아파트만 들어서가지고 단가가 얼마, 얼마라고 하는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는 이 대표의 발언과 모순되는 대책이 될 것이다. 느닷없이 용적률이 상향되면 스카이라인이 훼손되거나, 고층아파트값은 더 뛰어 천박하다는 도시가 더 천박해질 수 있어서다. 천박한 도시가 싫다는 여권이 얼마나 고상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손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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