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석창우 (12) 결혼 예물 팔아 마련한 사업자금 몽땅 날려

먹고 살 방도로 구기자 재배 시작, 남 도움에만 의존하다 사업 실패

석창우 화백(오른쪽)이 아내 곽혜숙 여사와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두 팔을 잃은 뒤로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준 아내 곽혜숙 여사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인 1986년 11월 즈음이다. 서울 생활이 너무 답답해 처가가 있는 전북 전주로 내려갔다. 1년 반 동안 그곳에 머물며 아내와 처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전주에 내려간 건 요양 목적도 있었지만 앞으로 내가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 지 할 일을 찾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당시 난 한약재에 관심이 많았다. 약초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구해서 독파도 했다. 혹 전주로 내려가면 약초를 재배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전주로 이사 간 후 집에서 가까운 중앙시장부터 전주에서 가장 크다는 남부시장과 모래내 시장 등 재래시장 이곳저곳을 다니며 약재상을 기웃거렸다. 어떤 약재가 잘 나가는지도 알아봤다. 어느 정도 확신이 섰을 때 아내에게 물었다. 돈 좀 있느냐고. 아내는 전주로 내려오면서 연금을 2년 치 당겨서 집 사는 데 사용해 돈이 없다고 했다. 난 아내에게 사실 약초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한번 재배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며칠 후에 100만원을 주면서 약초를 키워 보라고 했다. 장모님으로부터 약초 심을 밭도 빌려 놓았다면서 이후의 걱정까지 해소해 줬다.

구기자를 키워보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양손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모두 남의 손을 빌려야 했기에 수지 타산도 맞지 않았다. 결국, 난 사업에 실패했고 100만원은 고스란히 날아갔다. 하지만 아내는 실패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이후 내가 아들에게 그림 그려 준 것을 계기로 서예와 그림을 배우려고 할 때도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

자기 일 외는 관심도 없었던 부족한 남편이었던 난 나중에 가서야 100만원을 어디서 구했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결혼 예물을 팔아서 마련했다고 답했다.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다음에 돈을 벌면 꼭 좋은 예물을 다시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아내가 마흔 살이 되기 전에는 꼭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화가의 길을 들어선 초창기엔 전시를 많이 해도 작품을 팔아 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개인전을 했지만, 전시 비용을 충당할 정도만 돈이 들어왔다. 결혼 예물을 살 만한 금액에는 여전히 모자랐다. 아이들에게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 자신부터도 약속은 철저히 지켜왔는데 그런 약속이 나로 인해 깨졌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2009년 12월 즈음, 한 지상파 방송국의 성탄 특선 다큐멘터리프로그램 ‘인연, 기적을 부르다’에 출연하게 되면서 점점 내 이름이 알려졌다.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의 작품 구매 문의가 이어졌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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