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땅 내려다보며 첫 ‘헬기비행 기도회’

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28>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앞줄 왼쪽 일곱 번째)가 2006년 3월 서울 잠실 헬기장에서 정금성 권사(소 목사 오른쪽)와 기관장, 전도왕 수상자 등과 함께 헬기비행 기도회에 앞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새에덴교회 전도특공대원들.

2006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집회에 갔을 때 샌디에이고의 한 한인 목회자로부터 놀라운 부흥사례를 들었다. 교회 개척 때 경비행기를 이용해 목회 대상 지역을 비행하며 간절히 기도한 결과 교회가 기적적으로 부흥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기적은 순수하게 믿는 마음속에서 일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 1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국내 최초로 헬기비행 기도회를 추진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탐지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땅을 보고, 믿음으로 추수하겠다고 선포하는 것이었다. 또한, 공중의 권세를 잡은 마귀와 싸워 이겨 구원의 방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시대를 밝히는 빛의 교회가 되겠다고 선포하는 기도회였다.

헬기비행 기도회는 2006년 3월14일 경기 분당과 용인, 죽전, 동백, 수지, 신갈 상공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오전 10시 잠실헬기장에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헬기가 나타났다. 헬기를 본 참가자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이 행사에는 나의 기도의 후원자 정금성 권사님을 비롯해 장로회장, 각 기관장, 전년도 전도왕 수상자 3명 등 20여명이 참가했다.

비행은 오전과 오후 2회로 나눠 진행됐다. 참가자들을 태운 헬기는 오전 10시30분 잠실 헬기장을 이륙해 한강 둔치를 지나 올림픽대교 앞에 이르러 기수를 남으로 돌렸다.

이륙한 지 10분이 지날 무렵 새에덴교회 상공에 다다랐다. 교회 상공을 지날 때 옥상에 나와 있던 선교원 어린이들과 성도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아, 하나님께서 이 땅을 내려다보시면서 저 황폐한 땅이 어서 빨리 복음화되기를, 수많은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시겠구나.”

어느새 가슴이 뜨거워졌고, 두 번의 비행을 하면서 허리가 끊어지는 기도를 드렸다. “주여, 손을 들어 기도하는 저 모든 땅이 복음의 지경이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교회가 용인과 경기도를 넘어 민족 복음화를 일으키는 부흥의 진원이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비행하는 모든 지경에서 어둠의 권세가 물러나고 빛의 도성이 되게 하소서.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지역의 모든 교회가 부흥하게 하소서.”

기도하는 가운데 나의 마음 안에 한 줄기 빛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이 밀려왔다. 창세기 13장 14~15절의 말씀이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순간 나의 눈시울과 가슴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뜨거워졌다. 태어나서 이처럼 간절한 기도를 몇 번이나 해 봤을까. 정말로 뜨겁게 눈물로 기도했다.

젊은 시절 전남 화순 백암교회를 개척하고 포효하는 무등산 호랑이가 돼 기도했던 것처럼 경기 남부지역의 부흥을 갈망하며 울부짖는 기도를 드렸다. 지상에 있을 때는 경기 남부지역이 단면적, 평면적, 부분적으로 느껴졌지만, 헬기를 타고 내려다본 경기 남부지역은 입체적이고 전면적으로 다가왔다.

헬기를 타고 잠실, 성남, 분당을 거쳐 죽전에 도착했다. 다시 새에덴교회 상공을 지나 성남, 분당, 죽전, 동백, 구성, 신갈, 영통, 수지 등 경기 남부지역을 순회하며 기도하는데 그 복음의 중심축에 새에덴교회가 우뚝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헬기비행 기도회는 그야말로 지상과 공중이 서로 합한 입체적인 기도회였다. 하늘에서는 교회 상공을 선회하면서 기도회가 열리고, 땅에서는 땅 밟기 행사를 병행함으로써 하늘과 땅이 함께 하는 하늘땅 기도회로 열렸다. 교회 전도특공대원들은 교회 옥상과 최근 입주가 시작된 아파트 지역에서 이 지역이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으로 자리 잡도록 해 달라고 통성으로 기도했다.

가슴 속에서는 간절한 기도가 흘러나왔다. “주여, 21세기 통일 한국시대를 향하여 새에덴교회가 더 높이 웅대한 비상을 하게 하소서. 동서남북 바라보는 곳마다 우리의 지경이 되게 하여 주소서. 악한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반드시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을 이끄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그뿐만 아니라 경기 남부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가 부흥의 주역이 되게 하소서.”

행사에 참석한 성도들은 입을 모아 교회를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간의 평면적이고 단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입체적이고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교회 부흥과 지역 부흥에 더욱 앞장서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 후 정말로 동서남북 사방 각지에서 수많은 성도가 구름떼처럼 몰려왔다. 용인 전 지역과 성남, 수원, 동탄은 물론 서울과 전국 각지에서 새벽으로 낮으로 밤으로 성도들이 은혜를 사모하며 밀려왔다.

지역사회와 21세기 통일 한국시대를 향한 새에덴교회의 부흥 날갯짓이 지역사회를 따뜻하게 덮고 있었다. 목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최선이 만났을 때 기적같이 부흥이 이뤄지는 것이다. 놀라운 부흥의 가속도만큼이나 새에덴의 영향력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었다.

▒ 왜 ‘생명나무 목회’인가
아브라함이 택한 생명나무


아브라함은 생명나무를 잘 선택해서 복의 근원, 축복의 조상이 된 사람이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드리라고 했을 때 선악과를 선택하지 않고 무조건 생명나무를 선택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이 주신 시험에 승리해 위대한 축복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됐다.

아브라함은 어떤 생명나무를 선택함으로써 축복의 조상이 될 수 있었는가. 첫째, 아브라함은 먼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생명나무를 선택했다.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질투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키나’라고 하는데, 긍정적인 의미로 열정이라는 말로 쓰였지만 부정적인 의미로는 시기, 질투라는 말로 쓰였다.

그런데 그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무척이나 알고 싶었던 것은 ‘과연 아브라함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독자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의 제물로 드리라고 했던 것이다. 아브라함도 사람인데 어찌 고뇌와 고통이 없었겠는가.

만일 그 순간 아브라함이 선악과를 선택했다면 하나님을 의심했을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도 다른 이방신과 다를 바 없다고 푸념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은혜와 생명이 되는 생명나무를 선택하며 이 세상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됐다.

둘째, 아브라함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의 생명나무를 선택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 역시 중요했다.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돈독하고 신실하게 믿지 않으면 이삭을 드릴 수도 없었거니와 축복의 조상이 될 수도 없었다.

이때 아브라함이 선악과를 선택했더라면 분명히 흔들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했던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를 바라보는 순간 하나님을 의심하고 그들의 믿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의 생명나무를 선택했다.

선악과를 선택했더라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삭을 주어 놓고 다시 뺏어 가느냐’고 원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약속의 자녀로 주었는데 이 자녀를 불에 태워 죽여 버리면 어떻게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겠느냐’고 불평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이랬다저랬다 하느냐’며 스스로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믿음의 생명나무를 선택하니까 여전히 선하신 하나님이요, 인자하신 하나님으로 믿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의 제물로 드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이삭을 부활시켜 내든지, 아니면 그 어떤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부활 신앙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히 11:19)

셋째, 아브라함은 순종과 헌신의 생명나무를 선택했다. 만약 아브라함이 선악과를 선택했더라면 하나님 앞에 무슨 순종과 헌신을 했겠는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당장 순종과 헌신의 생명나무를 선택했다. 지금까지 우리 하나님이 한 번도 실수하거나 잘못된 길로 인도한 적이 없고 항상 선한 길로, 복된 길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지금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이번에도 가장 귀한 축복을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유를 묻지 않고 순종과 헌신의 생명나무를 선택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진정한 복의 근원이요, 축복의 조상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창 22:17~18)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대부분의 성도가 편리주의 신앙에 빠져 있다. 아마 이삭 같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고, 역설적이고 희생적인 신앙만을 이야기하면 다 도망가 버릴지도 모른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두려움과 불안, 우울함 속에 영적 안일과 태만, 세속화에 빠져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사랑과 믿음, 순종과 헌신의 생명나무를 선택해야 한다.


소강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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