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석창우 (15) ‘간판’ 없다는 이유로 개인전 번번이 막혀

김병종 교수 “전업 작가 역량 충분”… 1998년 고대하던 생애 첫 개인전

1998년 서경갤러리에서 열린 ‘제1회 석창우 누드크로키전’ 포스터.

1991년 전라북도서예대전 입선을 시작으로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작품이 쌓이자 개인전을 하고 싶었다. 내 그림에 대한 반응도 보고 초대전 개최 가능성도 알아볼 겸 화랑을 찾아다니며 내 그림을 보여줬다.

하지만 찾는 화랑마다 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작품은 좋은데 초대전을 하려면 유명 미대를 나왔거나 아니면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아야 가능하다고 했다. 공대 전기과를 나온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대답이었다.

아내가 내게 대학원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했다. 기왕 다닐 거면 서울대학교를 지원해 보라고 했다. 서울대 동양화과를 지원하려고 알아보니 김병종 교수께서 당시 전시도 활발히 하고 언론에도 자주 나오신다는 걸 알게 됐다. 김 교수를 찾아가 자문하기로 했다. 연구실 전화번호를 알아내 연락을 드린 뒤 한번 뵙고 싶다고 했다. 만날 약속을 잡고 그동안 그린 작품 몇 점을 가지고 아내와 같이 김 교수를 찾아갔다.


김 교수께 서울대 대학원에서 이론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김 교수는 내게 우선 이론서 몇 권을 추천해 주시면서 열심히 해보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추천받은 동양화론 동양미술사 중국미술사 한국미술사 등을 공부했다. 그리고 95년 처음 대학원 입학시험을 봤다.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원 동양화과는 4명을 모집했다. 같이 시험을 본 서울대 동양화과 친구들과 얘기를 해 보니 4~5수 정도까지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했다. 나는 10년 정도는 붙을 때까지 계속 지원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그해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난 뒤 바로 그다음 해에는 지원하지 않았다. 이론 공부를 더 한 뒤, 다시 그다음 해에 입학시험을 봤는데 또 떨어졌다. 10년은 도전해 볼 생각이었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도전하기로 다짐하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던 차에 김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 교수는 내게 서울대에 지원하려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론 공부를 하고 싶다는 대답과 함께 그동안 화랑에 돌아다니며 들었던 얘기를 전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작품을 전시할 기회가 없다는 현실을 말했다. 김 교수는 대학원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교수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학생들 위주라고 하시면서 내게 교수가 될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난 교수가 될 생각까지는 없었다.

김 교수는 “석 선생은 현재 하는 작품이 좋으니 전업 작가로 나가도 충분할 것 같다”며 “자신 있게 작업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난 10번은 도전하려던 대학원 입학 시도를 3년 동안 두 번 도전한 거로 만족하고 꿈을 접었다.

그 후 김 교수는 내 첫 개인전이었던 98년 전시회에도 직접 방문해주시면서까지 계속해서 격려해 주셨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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