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의 흰 유니폼을 입은 중년 부부가 야구장 외야석에서 남자아이 넷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열 살을 조금 넘은 듯 보이는 남자아이 넷은 하나같이 글러브와 고무공을 챙겨왔다. 몇 걸음을 떨어져 지켜보니 한 명은 아들이고, 나머지 세 명은 아들의 친구다. 아들은 아버지를 붙잡고 떼를 썼다. “떨어져 앉기 싫어요.” 나머지 세 아이는 눈만 깜빡이며 좌석 배정을 놓고 협상하는 친구를 말없이 응원했다. 그날따라 볕은 경기 시작 직전까지 살갗을 따갑게 찌를 만큼 강렬했고, 습기는 언제든 비를 뿌릴 기세로 대기를 휘감았다. 중년 부부의 사투가 힘겨워 보였다.

경기장 관중석은 특별한 곳이다. 주변 관객과 몇 시간을 함께 환호하고 탄식하고 응원가를 부르다 보면 왠지 모를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경기를 함께 관전하는 행위는 교감이다. 처음 보는 옆 관객도 이웃처럼 느껴지는 마당에 친구끼리 떨어져 앉으라니.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관중석에서 나란히 앉고 싶은 마음이 어른이라고 다를까. 중년 부부가 이를 모르지 않았을 테다.

아버지는 아들을 집요하게 설득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떨어져 앉아야지.” 아들은 지지 않았다. “식당과 지하철에서 나란히 앉았잖아요. 왜 야구장에서만 떨어져 앉나요.”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아들을 설득할 말을 찾아냈다. “덥지? 유니폼을 벗어 의자 사이사이에 걸쳐 놓을까. 선수 이름이 운동장으로 보이는 쪽으로 말이야. 선수들이 우리를 봐 줄지도 몰라. 카메라가 우리를 찍을 수도 있어.” 그제야 남자아이 넷은 옆으로 두 칸, 앞뒤로 두 칸씩을 떨어져 착석했다. 그 사이의 빈 좌석은 두산의 인기 선수인 오재원·오재일·유희관과 지금은 NC 다이노스로 떠난 옛 포수 양의지의 이름을 새긴 유니폼으로 채워졌다. 중년 부부는 남자아이 넷 뒤로 두 칸을 더 떨어져 앉았다.

어른 둘과 아이 넷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그 옆에서 양산을 쓰고 붙어 앉아 중년 부부의 사투를 지켜본 연인은 음료를 담은 가방을 사이에 놓고 서로의 간격을 좌석 두 칸 너비로 떨어뜨렸다. 담장 바로 앞에서 선수들을 카메라로 촬영하던 다섯 명의 열성 팬은 고개를 흘끔흘끔 뒤로 돌려 눈치를 살피더니 몇 걸음씩 간격을 벌려 대열을 정비했다. 그렇게 외야석 한쪽에 바둑판을 그린 것처럼 정확하게 서로의 간격을 벌린 관객 대형이 완성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프로스포츠 관중석을 개방한 지난 24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외야석에서 펼쳐진 풍경의 하나다.

관중석에서 제2차 대유행이 시작되지 않을까. 경기장 관중석 개방을 놓고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침착했던 잠실구장 관중은 홈팀인 두산 선발투수 이영하의 1회초 초구가 포수 정상호의 미트로 빨려들자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이후부터 응원가와 육성 구호는 경기 내내 울려 퍼졌다. 비말이 여기저기로 날아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 28일 홈구장 부산 사직구장에 처음으로 들인 관중을 분산하지 않고 내야석으로 유치해 사회적 거리두기 기조를 무너뜨렸다는 지적을 받고 개선을 약속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야구장은 원래 그런 곳이었다. 구단의 음향시설로 분위기를 띄우고 관중은 침착하게 지켜보는 미국이나 사설응원단의 트럼펫 연주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응원하는 일본과 다르게 한국의 야구장 관전 문화는 유쾌하고 자유분방하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곳이 야구장이었다. 경기장 관전 문화는 한국에서 대체로 비슷하다. 다른 종목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이제 1일 오후 7시가 되면 축구장 관중석이 개방된다.

인간 사회는 이제 감염병과 공존할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코로나19를 물리쳐도 어떤 감염병이 인간 사회에 파고들지 모른다. 그러니 경기장 관중석이 개방됐고, 사회 곳곳에서 일상 복귀가 시도되고 있다. 지금 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의지와 타인을 걱정하는 양심으로 모두의 삶을 하루하루 지탱할 뿐이다.

때로는 그 조용한 저항이 거창한 선언이나 가혹한 비판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남자아이 넷을 떨어뜨려 앉히기 위해 설득하고 주변 관객을 환기해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범적인 관객 대형을 완성한 야구장 외야석의 중년 부부처럼 말이다. 지금은 그 집요함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김철오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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