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4일부터 17일간 진행되는 ‘2020 세계유산축전-제주’에선 그간 접근이 불가능했던 거문오름 주변 용암동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행사를 앞두고 진행된 지난 24일 언론공개회에서 참가자들이 만장굴 출구로 빠져나가는 모습.

이끼 낀 협곡의 바위를 내려가니 아연 SF영화에 나올 법한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1만 년 전 제주의 거문오름 화산이 폭발해 분출한 용암은 처음엔 그 뜨거운 열기가 채 식지 않아 V자 협곡을 만들었다. 그러다 점점 굳어지며 여러 동굴을 탄생시켰는데 그 중 두번째로 생긴 것이 이 웃산전굴이다. 짐승이 아가리를 벌린 듯 좁은 동굴 입구는 내부로 갈수록 커졌다. 천장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며 태고의 기억을 건드렸다.

‘제주화산섬과 용암 동굴’은 한국 유일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다. 한라산,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계(거문오름과 주변 동굴)로 구성돼 있다. 탐방객이 끊이지 않았던 다른 화산과 달리 용암동굴은 2007년 지정 이래 대중의 접근이 사실상 봉쇄됐다. 보존의 기치 아래 꼭꼭 숨겨졌던 용암 동굴의 신비한 자태가 딱 17일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9월 4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2020 세계유산축전-제주’의 체험 행사를 통해서다. 최근 탐험하는 기분으로 미리 그곳을 다녀왔다.

‘불의 숨길-만년의 시간을 걷다’는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월정리 푸른 바다로 흘러가기까지 22.4km 구간을 누구나 걸을 수 있게 용암 흐름을 따라 개발된 트레킹 코스다. 거문오름은 돌과 흙이 유난히 검은색으로 음산한 기운을 띠는 데에서 유래됐다. 여기서 치솟은 용암은 북서쪽 바다로 흘러가며 기기묘묘한 동굴을 만들어냈다. 벵뒤굴,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8개의 동굴이 그것이다.

‘유네스코 이장’이라 불리며 답사 코스를 개발한 김상수 ‘세계유산축전-제주’ 운영단장은 “처음엔 이끼긴 바위를 지나 목장을 스쳐가며 사람들이 생활하는 논밭을 끼고 바다로 가는 길”이라고 소개했다.

용암 길은 인간의 도로와 포개지지 않았다. 도로를 가로지르고 인적 없는 숲속에도 길을 냈다. 김 단장은 들판의 너럭바위(빌레)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용암이 굳어져 생긴 바위입니다. 이 빌레 아래가 동굴이라고 보면 됩니다.” 빌레가 움푹한 곳은 자연 호수가 형성돼 말들이 목을 축였다. 동굴이 푹 꺼지며 용암다리가 생긴 곳도 있다.

자연유산 8개 동굴 중 유일하게 볼 수 있었던 만장굴(총 7.,4㎞)의 미공개 구간도 마주할 수 있었다. 기존 2㎞구간(2구간)에 더해 미공개 제1구간(1㎞)이 개방된다. ‘출입금지’ 표지판을 넘어 들어간 제1구간은 1만 년 전 형성된 동굴 아파트처럼 1·2층으로 돼 있었다. 바닥의 바위는 엿가락처럼 휘어져 용암이 쿨렁거리며 휩쓸고 지나간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바다를 향한 용암이 부채살처럼 퍼지며 만들어낸 검은 현무암 바위는 또 다른 장관을 연출했다.

세계유산축전은 거문오름·주변 동굴과 함께 성산일출봉, 한라산 등지에서 펼쳐진다. 트레킹과 동굴 탐험 다양하게 구성돼 있어 프로그램을 꼼꼼하게 살피는 게 좋다.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예약해야 한다. 곳곳에 현대미술 작품도 설치된다. 동굴 속에서 펼쳐지는 만장굴 아트프로젝트, 성산일출봉의 우뭇개 해안 절벽을 스크린 삼아 레이저를 쏘는 ‘실경공연’ 등도 준비돼 있다. 세계유산축전-제주를 총괄하는 김태욱 총감독은 “용암이 만든 1만년의 시간을 걷는 이 길은 산티아고 순례 길을 능가하는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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