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등에 대해 직권조사를 결정한 것은 바람직하다. 인권위는 피해자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와 여성 단체들의 직권조사 요청에 대해 30일 만장일치로 이를 의결했다. 인권위는 직권조사팀을 구성해 박 전 시장에 의한 성희롱 의혹과 서울시의 피해 묵인·방조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또 선출직 공무원에 의한 성희롱 사건 처리 절차도 살펴볼 예정이다. 피해자 측은 서울시가 주도하는 진상조사를 거부하고 독립기구인 인권위에 직권조사를 요청했다. 그만큼 이 기관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크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계를 지적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권위는 2018년 2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 미투를 직권조사했다. 하지만 5개월 뒤 서 검사 측 진정을 ‘각하’ 처리하고 직권조사를 조용히 종결했다. 인권위가 2001년 이후로 실시한 직권조사 192건 중 유일하게 각하된 사례다. 당시 인권위는 검찰이 부담스러워 중단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이 사건이 재판 중이라 각하했다고 답변했다. 이런 전력 때문에 이번에도 흐지부지 끝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서울시의 방조 의혹, 고소 사실 유출 의혹 등도 이미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권위는 강제수사권도 없어 진실을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인권위 직권조사가 성과를 거둘지는 결국 관계기관 및 조사 대상자들의 적극적인 협조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인권위가 성추행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뿐 아니라 우리 사회 성차별 제도 전반에 관한 개선 권고안을 내주길 기대한다.

사건 직후 피해자의 입장에 서지 않고 침묵했던 여성가족부는 뒤늦게 서울시에 대한 현장점검 결과를 내놓았다. 서울시에 피해자 보호·지원 방안이 없고, 고충처리시스템에는 정보 유출에 따른 2차 피해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다. 사건 20일이 지나도록 개선안 발표 없이 조직적 침묵으로 일관하는 서울시는 물론이고, 뒤늦게 여론에 밀려 알맹이 없는 현장점검 결과를 내놓은 여가부도 소극적 대처에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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