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금산분리(산업·금융자본 결합 금지)’ 빗장까지 열었다. 대기업 지주회사의 벤처캐피털(CVC) 보유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부동산에만 쏠린 자금을 벤처 투자 등으로 분산해 보겠다는 절박함이다. 정부는 30일 ‘제1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일반지주회사의 CVC 제한적 보유’ 방안을 발표했다. CVC는 회사 법인이 대주주인 벤처캐피털이다.

CVC를 계열사로 보유해 벤처 투자를 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CVC가 활발하다.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은 CVC인 구글벤처스 및 캐피털G를 자회사로 설립한 뒤 우버, 에어비앤비 등에 투자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는 불가능했다. 기업집단 내 일반지주회사가 있으면 체제 밖 계열사 또는 해외법인만 가능하다. 롯데·CJ·코오롱 등은 지주체제 밖 계열사로, SK·LG 등은 해외법인 형태로 각각 CVC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일반지주회사도 CVC를 보유할 수 있다. 그 대신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일반지주회사는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 및 신기술사업금융업자 형태로 CVC를 설립할 수 있다. 다만 완전 자회사로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 차입 규모는 자기자본의 200%로 제한되며, 펀드 조성 시 외부자금 출자도 40% 한도를 설정했다.

또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CVC는 투자 행위만 허용되며, 타 금융업은 금지된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막기 위해 CVC는 이들 지분이 있는 곳에 투자도 할 수 없다. CVC의 해외투자도 20%로 제한한다.

이날 규제 완화의 배경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주문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CVC를 도입하는 등 벤처기업에 시중의 유동성이 충분히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재계는 일반지주회사의 CVC 허용을 환영한다면서도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추가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를 기대한다는 반응이다. 다만 CVC가 넘쳐나는 유동성을 흡수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시장과 기술을 잘 아는 대기업이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는 길이 열린 점에서 의의가 크다”면서도 “제도 시행과 시장 관행 정착을 보아가며 완화·보완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CVC를 지주회사의 완전 자회사 형태로 설립하게 한 점, CVC의 부채비율을 200%로 제한한 점, 펀드 조성 시 외부자금을 40%로 제한한 점은 정책의 실효성을 저하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CVC 설립의 자율성 확대, 부채비율 상향, 펀드의 외부자금 비중 확대 등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해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계는 그러나 CVC 허용으로 유동성 분산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는 자금을 흡수하는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솔직히 판단은 어렵다”면서도 “확실한 투자처가 될지는 시간을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한 재계 관계자도 “CVC 관련 논의는 오래전부터 시작됐던 것”이라며 “부동산 유동성 분산을 위해 CVC 규제가 완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권민지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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