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석창우 (16) “여기 들어오시면 안돼요”… 종종 잡상인 취급받아

가장 한국적인 작품 그리려 고민하다 ‘우리 말과 글’이 적합하다는 것 깨달아

석창우 화백의 한글 문자 추상 작품. ‘교육’ ‘안중근’ ‘대통령’ ‘평화’(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글씨를 추상화했다.

한창 그림을 배우기 위해 이곳저곳을 수소문해 찾아다니던 1990년대 당시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다. 오래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방송 사회자는 내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옷을 잘 입어야 무시를 안 한다는 얘기를 했다. 당시에는 옷이나 가방을 대충 사서 입고 또 지니고 다녔다. 한참 배움에 목말라 여러 가지를 배우며 공부할 때라 다니는 곳도 많았다. 그럴 때면 건물의 경비실이나 보안실에서 검은 가방을 메고 들어가려는 나를 가로막기 일쑤였다.

보안 요원들은 종종 “여기는 물건 팔러 들어갈 수 없다”며 길을 막았다. 난 “공부하러 왔다”고 말하고 나서야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 백화점에서 열리는 누드크로키 수업을 듣기 위해 들어갈 때도 보안 담당 요원은 내게 백화점에서는 물건을 팔 수 없다며 가로막은 적도 있었다.

그동안 아내에게는 괜히 상처가 될까 봐 이런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러다 해당 라디오 방송 사회자가 말한 것을 계기로 아내에게 나도 종종 물건 파는 사람으로 오해받는다고 털어놨다. 그때부터 아내는 내게 좋은 브랜드의 옷과 가방을 사주기 시작했다. 아내는 재래시장에서 사 입더라도 내게는 좋은 옷과 가방을 입고 들고 다니게 했다. 라디오 사회자 말대로 좋은 옷과 가방을 들고 다니니 그다음부터는 건물의 경비원이나 보안요원이 날 가로막는 일이 없어졌다. 수십 년 전의 일인 만큼 지금은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도곡 김태정 선생은 강의하실 때 항상 한국적인 작품을 하라고 강조하셨다. 그 말을 내 그림에 적용해 보려고 궁리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를 두고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여러 문헌을 찾아보았지만 내 작품의 소재로 사용할 만한 한국적인 것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고민할 당시는 서예를 하며 ‘문자 추상’이라는 장르와 더불어 누드크로키에 입문하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도곡 선생의 강연 내용이 갑자기 생각났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가장 가까이 있고, 생활화되어 있는 것. 그것이 내겐 곧 한글, 우리나라 말과 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당시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입니다’란 말이 유행했다. 또 ‘우리말, 우리글, 우리 사상을 가꿔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란 말도 눈에 들어왔다. 난 그 후부터 한글의 각 단어를 파괴 결합 생략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과 조선 시대 왕들, 그리고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으로 작업을 했다. 때론 스포츠 신문에 나오는 운동선수나 연예인 이름 등으로 작업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작품을 모아 1999년 생애 두 번째 석창우 개인전을 열었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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