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서초동 막장극

정현수 사회부 기자


뭔가 아쉽다 싶었는데, 결국 ‘육탄전’까지 추가되면서 지금 서초동에서 벌어지는 드라마에 ‘막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손색이 없게 됐다. 지난달 29일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사건’ 수사팀이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전화 유심칩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수사팀장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정진웅 부장검사와 한 검사장이 벌인 몸싸움 얘기다. 한 검사장 측은 변호인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정 부장검사가 일방적으로 폭행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수사팀 쪽은 휴대전화 초기화 등 증거물 훼손을 막기 위해 제지하는 과정에서 넘어진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 민망한 장면을 두고 누구 말이 맞는지 따지는 건 한가해 보인다. 대신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이해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사가 진행돼온 흐름을 짚어보자. 사안의 핵심은 채널A 이동재 전 기자가 금융사기 혐의로 수감 중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를 협박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위 의혹을 캐내려 했는지와 이 과정에서 한 검사장과 공모했는지다.

지금까지 공개된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의 ‘부산고검 녹취록’에는 뚜렷한 공모 정황이 보이지 않다. 오히려 이따금 유 이사장을 거론하는 이 전 기자의 질문에 한 검사장은 “관심 없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 이 전 기자에 대한 수사 및 기소를 권고한 반면 한 검사장에 대해서는 수사를 중단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특종 욕심에 취재윤리를 어긴 이 전 기자에게 죄를 물을 수 있을지언정 한 검사장이 여기에 공모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각에선 압수수색 과정에서 벌어진 돌발상황이 수사 명분을 잃게 된 수사팀의 초조함을 방증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어쩌면 간단해 보이는 이번 수사가 이렇게까지 과열된 것은 애초부터 이 수사가 시종일관 갈등 관계를 보이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리전 양상을 띠었기 때문이다. 추 장관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서울중앙지검 산하 수사팀과 윤 총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검사장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돼버린 것이다. 사건 초기 배당 문제부터 전문수사자문단 설치 논란, 윤 총장의 수사 배제를 지시한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까지 이어지면서 대리전을 통한 두 수장 간 갈등은 극에 달한 상태다. 여기에 여당이 추 장관에게 힘을 싣고, 야당이 윤 총장을 지원사격하면서 사안은 정치적 진영 대결 문제로까지 비화하는 중이다.

갈등이 확전되면서 정작 그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검찰 개혁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제대로 진전되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달 27일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검찰 개혁 관련 권고안을 내놨지만 검찰 안팎에서 거센 비판만 받고 있다. 권고안의 골자는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법무부 장관이 고검장들을 서면으로 지휘토록 하는 내용이다. 검찰 개혁의 핵심 중 하나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검찰이 휘둘리지 않도록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인데, 이는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한을 법무부 장관과 고검장들에게 분산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법무부 장관 권한만 더욱 강해지면서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번 정부 역시 검찰이라는 ‘잘 드는 칼’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범위를 제한했다고 하지만 검찰의 수사권은 여전히 강력하다.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 분야에 대해서는 검사는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다. 검찰의 수사능력을 포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최소한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는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검찰을 만들어야 할 텐데, 서초동에서 벌어지는 막장극을 보고 있자니 검찰 개혁은 또 물 건너간 게 아닌가 싶다.

정현수 사회부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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