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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석창우 (17) 조명 다 꺼진 바닥 더듬어가며 한석봉처럼 연습

‘한글’ 다음으로 ‘한국전통 공연’에 주목… 정동극장 배려로 객석복도서 그림 그려

석창우 화백이 그린 ‘한국의 몸짓’ 작품들로 한국 전통 사물놀이패가 공연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석 화백은 2002년 서울 중구 정동극장의 배려로 객석 뒷편 복도에서 전통 공연을 관람하며 한국 특유의 몸짓을 그려냈다.

한글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은 내가 다음으로 시선이 간 것은 우리의 전통공연이었다. 마침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 아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2002년 내가 극장에 가서 공연을 보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줬다. 정동극장에서 공연하는 다양한 전통공연을 객석 뒤 복도에서 그릴 수 있도록 공간도 마련해줬다.

한 가지 애로사항이라면 공연 시작 후 무대는 조명이 있어 환하지만, 내가 있는 자리는 조명이 다 꺼져 바닥에 놓인 화선지와 먹물이 든 컵, 붓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붓에 먹물을 찍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난 앞을 못 보는 분들의 심정이 이러하리란 걸 생각하며, 도구가 잘 보이지 않더라도 거리와 위치를 더듬어 가면서 작업에 몰두했다. 조선시대 서예가 한석봉이 된 것만 같았다. 한석봉이 그의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불을 끈 채 자신은 글을 쓰고, 어머니는 떡을 썰었다던 일화가 생각났다. 한석봉처럼 열심히 연습에 매진한 결과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졌다. 한국 전통의 몸짓과 관련된 많은 작품을 낼 수 있었다.


그 후로 난 끊임없이 노력하면 안 될 일도 된다는 걸 경험했다. 1년 반 동안 꾸준히 정동극장을 찾아 그림을 그린 결과 2003년 그곳에서 ‘제14회 석창우의 한국의 몸짓전’을 열 수 있었다. 이 자릴 빌어 공연장에 들어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배려해 준 정동극장 측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한국’을 담은 첫 번째 작품이 ‘한글’이었고 두 번째가 ‘한국전통 공연’이라면, 세 번째는 ‘한국 사람’이었다. 그 뒤로 난 한국 사람을 주제로 한 수묵 크로키를 주로 그렸다.

그 무렵 덩달아 내 작업량도 부쩍 늘었다. 문제는 힘들게 간 먹을 금방 써버린다는 것이었다. 마침 먹을 갈아주는 기계가 나왔다기에 한동안은 기계를 마련해 작업했다. 하지만 기계도 내 작업량을 못 따라왔는지 금방 고장이 나곤 했다. 아침 식사를 하자마자 작업에 들어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작품에만 몰두하니 기계도 버틸 재간이 없었나 보다. 붓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재료비가 만만치 않게 들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또한 예비해두고 계셨다. 그 무렵 난 미국에서 활동하시던 현대 서예가 하농 김순욱 선생과 교류하고 있었다. 김 선생과의 인연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 선생께선 국제현대서예전에 참가하시며 한국 작가들과 교류하기 위해 몇몇 작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셨다. 당시 아무도 답장을 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내가 답장했다. 이 작은 인연은 내가 훗날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던 필방 ‘명신당’ 측으로부터 재료 후원을 받는 인연으로 이어졌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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