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테러’에 무방비, 시급한 선수 보호 장치

故 고유민 사건 대책 목소리 높아

고유민이 생전인 지난 2월 12일 수원현대체육관에서 현대건설 소속으로 코트에 나서 상대 한국도로공사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현대건설에서 뛰었던 고(故) 고유민(25)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고유민이 악플로 고통받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25대 중반 꽃다운 나이의 선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온라인 상에서 악플러에 대한 비판과 함께 배구계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1일 경기 광주경찰서는 전날 오후 9시 40분쯤 광주시 오포읍의 고유민 자택에서 선수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고유민의 전 동료가 계속 전화를 받지 않는 게 걱정돼 자택을 찾았다가 그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현대건설에서 다섯 시즌 동안 함께 뛰었던 전 동료 이다영(오른쪽)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과 추모글. 연합뉴스

생전 고유민과 함께 했던 선수들은 앞다퉈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김연경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이다영은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텐데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라고 썼다.

고유민은 2013년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한 뒤 7시즌을 활약한 선수다. 입단 뒤 수비력을 바탕으로 백업 레프트로 활용됐고, 지난해 4월 처음으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현대건설에 잔류했다.

구단 관계자 등에 따르면 고유민은 지난 시즌 포지션 변경 문제로 큰 고통을 받았다. 레프트로 활용되던 고유민은 주전 리베로 김연견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후 지난 2월 11일 5라운드 한국도로공사전에 리베로로 처음 투입됐다. 구단 입장에선 레프트 포지션 선수들 가운데 공격력은 떨어지지만 디그와 리시브가 좋은 고유민으로 김연견 공백을 메우려 한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레 다른 포지션으로 뛰어야 했던 고유민은 경기에 녹아들지 못했다. 2월 15일 KGC인삼공사전에선 자신을 향한 목적타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해 팀의 1대 3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곤 바로 다음 경기부터 다시 레프트로 기용됐다.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유민이가 부담감 때문에 (리베로를) 못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고유민에게 수많은 악플들이 쏟아졌다. 현대건설 패배의 원흉으로 고유민을 지목하거나, 팀 위기 상황에서 리베로 포지션을 하기 싫다고 말한 걸 두고 ‘프로 의식이 없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런 ‘악플’은 포털 기사 댓글란과 소셜미디어 다이렉트 메시지 등을 가리지 않고 고유민을 타겟팅했다.

이에 고유민은 큰 고통을 호소하며 소셜미디어 계정을 닫기도 했다. 심적 고통에 경기에 투입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결국 고유민은 지난 3월 초 팀을 무단이탈한 뒤 5월 1일 한국배구연맹(KOVO)에 임의탈퇴 공시됐다.

주변 지인들에 따르면 고유민은 우울증 증세로 수면제를 먹어야 잠에 들 정도였다. 하지만 임의탈퇴 이후 새로운 삶에 적응한 듯 보였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6월 중순 복귀 의사를 물었지만 네일아트 학원에 다니는 등 새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해보였다”며 “그래도 언제든 돌아오고 싶으면 이야기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고유민과 한 팀에서 뛰었던 한유미 KBSN 해설위원도 “학원 다니며 잘 지낸다고 들었기에 이번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고유민의 죽음을 계기로 스포츠 선수 악플러에 대한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한 해설위원은 “외부에 얘기를 잘 안 해서 그렇지 저를 비롯해 많은 선수들이 협박성 댓글을 비롯해 가족을 향한 욕설, 성적인 비하까지 수많은 악플을 받는다”며 “경기에서 실수를 하면 ‘또 악플을 받겠구나’ 하며 위축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고유민의 소셜미디어엔 지난 5월 올린 “팬도 아니신 분들이 충고 같은 메시지를 보내지 말아달라. 저도 이제 일반인이라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악플러들을 상대로 한 게시물이 남아있다.

한 구단 사무국장은 “고유민과 친했던 선수들이 많이 우울해한다”며 “KOVO나 구단들 차원에서 미리 (악플에 대한 대응이) 이야기가 됐어야 했는데 안타깝지만 앞으로라도 대응책이 시급히 모색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해설위원은 “연예계 쪽 기사들엔 댓글 금지가 됐는데 스포츠도 그런 대안을 고려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고 조언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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