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석창우 (18) 값비싼 서예 재료 후원받고 실력 빠르게 늘어

하농 김순욱 선생 대신 재료구매 돕다 필방 대표와 친분 생겨 후원 약속

하농 김순욱 선생이 2007년 울산 현대예술관 갤러리에서 열린 ‘국제현대서예전’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석창우 화백은 이 전시회 개막 퍼포먼스로 작품을 선보였다.

1990년대 하농 김순욱 선생이 계시던 미국엔 서예 도구를 판매하는 곳이 없어 재료 구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김 선생은 주로 서울 인사동의 필방 ‘명신당’에서 재료를 주문해서 썼다. 문제는 당시 명신당에서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난 김 선생에게 재료 구매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 뒤로 김 선생께서 내게 재료 주문 메일을 보내오면 이를 프린트해서 가져가 명신당에 전해줬다. 명신당의 김명 대표하고도 친분이 생겼다. 몇 번 심부름하러 오가던 내게 김 대표가 조심스럽게 자신도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며 서예 재료를 후원해 주겠노라고 했다. 당시 난 연습량이 많았을 때라 붓이 석 달을 버티지 못했다. 석 달 정도 붓을 쓰면 털이 빠져 쓸 수 없게 돼 바꿔야 했다. 수입이 마땅치 않았을 때라 붓을 바꿔야 할 때면 아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붓은 서예 재료 중 가장 값이 비쌌다. 그런 내게 김 대표의 제안은 가뭄의 단비 같았다.

서예 재료가 해결되니 연습량이 늘어났다. 실력이 느는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다. 현재도 변함없이 아낌없는 후원을 이어오는 김 대표는 내 붓 교체 시기를 정확하게 알아차린다. 최근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출을 못 하는 내게 성경 필사에 쓸 붓이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냐며 연락을 해왔다. 필요한 붓과 다른 재료들을 알려주니 곧바로 보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또한 예수님의 프로그램이었단 걸 깨닫게 된다.


김순욱 선생과 인연은 내 첫 해외 전시이자 세 번째 전시회로도 이어졌다. 그가 날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오렌지카운티의 한 갤러리로 초대했다. 그의 도움으로 99년 미국 ‘LA아름화랑’에서 제3회 석창우 초대전을 열었다. 주최 측의 배려로 숙식을 지원받으며 보름 정도 전시회를 했다.

그곳에선 누드 크로키를 주로 전시했다. 현지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던 거로 기억하지만, 한국 관객들은 작품을 조금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성에 대해 보수적인 인식이 컸던 예전 한국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도 갔다.

보름 동안 미국에 머물며 태평양을 마주 보고 바닷가를 따라 길게 자리 잡은 수많은 고급 주택에 놀란 기억도 있다. 이전까지 대만과 일본 정도만 오갔을 뿐 미국까지 간 건 처음이었다. 몇몇 전시실도 해안가 주변 곳곳에 있었는데 무척 탐이 났다. 나도 이런 곳에서 전시실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싶었다.

한번은 그랜드캐니언을 여행할 때였다. 다들 그 웅장함에 놀랐지만, 난 성경에서 읽은 광야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잠잠히 생각에 잠겼다. 그런 내 마음을 하나님도 아셨는지, 해외로 나가서 많은 이들을 만나고 내 작품을 알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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