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전락한 전세, 집주인 10명 중 9명 “월세로 전환” [이슈&탐사]

[집주인 160명에게 물었습니다] “임대 시장, 월세가 중심될 것”

지난 1일 서울 여의도에서 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모임, 임대사업자협회 추인위원회 등 부동산 관련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임대차 3법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등 잇따른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월세 시대’가 가속화하고 있다. 국민일보가 지난달 30, 31일 설문조사에 응한 집주인 160명 중 전세 임대를 하는 134명에게 보증부월세(반전세)나 월세로의 전환 의향을 물었더니 90% 이상이 ‘그럴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여권에서도 “월세 전환은 정상”(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 “모두가 월세를 내는 나라가 될 것”(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월세 시대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당분간 ‘전세가 좋냐, 월세가 좋냐’ 논란이 이어지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월세가 중심이 되는 주택 임대 시대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상한율 5% 제한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된 직후부터 31일 오후까지 온·오프라인에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에 참여한 160명 중 전세로 집을 임대 중이라고 밝힌 134명의 90.3%(121명)는 앞으로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전환 이유로 60.3%(73명)가 ‘임대차 3법 등으로 임대인 부담 정책이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고 답했다. 31.4%(38명)는 ‘보유세 부담이 커서’라고 말했다. 7.4%(9명)는 ‘저금리 때문에’라고 답했다. 설문은 지난달 30일 주택 임대시장 변화에 관한 국회 공청회장과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카페)에서 실시됐다. 설문에 응한 집주인들이 보유 중인 임대주택은 서울이 61.4%(94건)로 가장 많았고 인천·경기 34.6%(53건), 부산 1.3%(2건) 등이었다.


집주인 160명 가운데 66.3%(106명)는 임대하는 주택에서 향후 실거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들 가운데 88.7%(94명)는 집을 전세로 임대하고 있다.

전세 집주인의 68.7%(92명)는 임대차법 통과 후 전세 재계약 시 임대료를 법이 정한 5% 이내에서 올릴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전월세상한제도에서 적용되는 ‘5%’(지방자치단체 하향 조정 가능) 상승 폭 제한은 임대료를 올리도록 한 최대 요율이다. 5% 아래로만 올리라는 뜻이지만 집주인들은 ‘최저 요율’로 인식해 법정 상한선에 맞춰 최대한 임대료를 올리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임대료를 올리는 이유로는 ‘주변 전세가격 상승이 예측되기 때문’(55.4%, 51명), ‘나중에 자금이 필요할 때 크게 올리기 힘들 것 같아서’(37.0%, 34명)를 꼽았다. 한 응답자는 “임대료를 올릴 생각 없이 기존 임차인과 4년 동안 잘살고 있었는데 법이 생겨서 어쩔 수 없다”며 “현재 계약기간 만료 후 임차인이 나간다고 하면 월세로 변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보증부월세(반전세)나 월세로 임대를 하는 집주인들도 25명 가운데 92.0%(23명)가 앞으로 5% 안에서 임대료를 올릴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 대부분(87.0%)은 ‘주택 보유·임대 관련 세금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에’를 이유로 들었다.

전세 집주인들은 기존 임차인과 계약이 종료된 뒤 새로운 임차인과 계약할 때 임대료를 크게 올리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신규 전세 계약 시 임대료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릴 생각이냐는 질문에 61.2%(82명)가 ‘15% 이상’이라고 답했다. ‘15% 내외’가 5.2%(7명), ‘10% 내외’(14명)가 10.4%였다. ‘올리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서울 지역 아파트 전세가 상승률은 강남구 6.7%, 서초구 5.8%, 노원구 1.5%, 도봉구 1.3% 등이다. 두 자릿수 이상 임대료 인상 의지는 앞으로 신규 전세 시장에 진입하는 신혼부부 등의 매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6ㆍ17부동산 대책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실거주’ 집주인 늘며 ‘전세 실종’ 가속

국민일보 취재팀이 지난달 31일 서울 대치동과 목동, 아현동, 용강동 인근 부동산을 취재한 결과 전세 매물을 찾기 어려웠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 H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은마아파트는 전세는커녕 월세까지 물건이 아예 없고 턱도 없이 비싸게 나왔다가 거둔 매물만 있다”며 “101㎡(30평) 전세가가 6억원, 115㎡(34평)가 7억원 정도였는데 그새 ‘더 불러도 되느냐’고 묻는 주인도 있었다. 내놓으면 바로 나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세가 없으면 월세라도 달라면서 연락처를 적어둔 사람만 1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인근 선경아파트와 미도아파트도 상황은 비슷했다. 학군을 보고 이사 온 지역이어서 대치동을 떠나지 않으려는 전월세 대기 인원이 많다는 설명이다. 신축 아파트인 래미안대치팰리스 역시 전세 매물을 구하기 어려웠다.

서울 목동에서는 인기 없던 월세 매물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목동 5단지의 D부동산 관계자는 “예전에는 보증금 1억원에 월세 210만원이면 잘 안 나갔는데 요즘엔 문의를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을 보유하면서 동시에 다른 집에 전세로 거주하는 경우에는 전세자금대출이 막히므로 월세 매물을 찾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부동산 관련 정책 발표 후 임대했던 주택에 들어가 실거주하겠다는 집주인이 크게 늘고 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 부동산의 유모 공인중개사는 “주인들이 ‘다 나가라’고 하는 입장이니까 ‘전세 계약 갱신해 달라’고 해서 대필한 거래는 최근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전세 계약 갱신의 경우 부동산을 통해 대필료를 지급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선경아파트 인근 S부동산 관계자는 “주인이 들어와야 하는 경우가 많아 계약 갱신 문의는 조용하다”고 말했다. 목동의 부동산에도 역시 실거주 요건을 채우려는 집주인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J부동산 관계자는 “실거주 요건을 채우려고 전세를 놨던 사람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6·17 부동산 대책에서 재건축 입주권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재건축 이외 지역도 양도세 감면을 위해 직접 거주하려는 움직임이 크게 일고 있다.

전문가들 “월세 시대 온다”

취재팀은 앞으로 전세 제도가 유지될 수 있을지 전문가 9명에게 의견을 물었다. ‘전세 매물이 줄어들 것’이라는 데 이견을 낸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의견을 낸 전문가는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 박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대한부동산학회장), 양지영 부동산R&C연구소 소장,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 익명을 원한 전문가다.

서진형 교수는 3일 “규제가 적용되면 임차인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구조”라며 “4년치 임대료가 급격히 상승할 수 있고 전세 매물이 아예 줄어들어서 실수요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전세는 재계약이 많은데 계약기간이 4년으로 늘면서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이 줄고 신규로 진입하는 실수요자들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가을에 전세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세 시대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김성달 국장은 “전세가 없어지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며 “전세 제도가 과거에는 세입자를 위한 것이었지만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갭투자 용도로 악용되는 일이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전월세 전환율이 높아져서 전세가 더 싼 것처럼 보이지만 전부 다 월세가 되면 결국 월세도 떨어질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임대차 3법 이후…]
모두가 월세 사는 나라 될까… 기로에 놓인 전세의 미래 [이슈&탐사]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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