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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의 인사이트] 동굴이 아니라 터널입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겪었는데 열심히 참으니 그리고 열심히 하니까 노오~력을 하니까 대학교수가 됐다 이런 간증은 하고 싶지 않아요.”

대학 4학년 때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아난 이지선 한동대 교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지난달 국민일보 크리스천리더스포럼이 이 시대 청년들을 응원하기 위해 주최한 ‘갓플렉스(God Flex)’에서다.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인 그는 처음에는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두 번째 삶을 허락해 주셨고 미국 유학을 마치고 지금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누고 있다.

온몸을 붕대로 감고 병실에 있을 때 엄마는 눈에 보이는 것은 점점 나빠지는 것 같고 현실은 암담하지만 하루에 한 가지씩 감사할 거리를 찾으면서 하루를 보내자고 했다. 손으로 숟가락 들고 밥을 입에 다시 넣었던 날, 환자복 단춧구멍에 단추 채웠던 날도 감사했다. 딱 한 곳 다치지 않은, 씻을 수 있는 발이 있는 것에도 감사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것 같고 날 버린 것만 같은 생각이 들던 때 그렇게 감사거리를 찾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허락하신 오늘을 잘 살아내고 이 또한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사고 때 인터넷에 회자됐던 안산동부교회 김영삼 장로의 기도문이 기억난다. 사고로 단원고생 아들을 잃은 그는 페이스북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회개하고 나온 것처럼 돌아와도 감사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정민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받은 것에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문을 올려 많은 이들을 숙연케 했다.

1948년 10월 여순반란 사건 때 손양원 목사는 좌익 폭도에 의해 25세와 19세 된 두 아들 동인, 동신이를 잃었다. 당시 여중생이던 동희씨는 두 오빠의 시신 앞에서 “하나님은 그때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라고 절규했다. 하지만 손 목사는 장례식장에서 하나님께 9가지 감사 기도를 드렸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을 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허다한 많은 성도 가운데 어찌 이런 보배를 하필 나에게 맡겨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한 아들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순교했으니 감사합니다.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두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나의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손 목사는 아들들을 죽인 청년을 양자 삼았다. 보통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10대 때 성폭행을 당한 오프라 윈프리도 하루에 다섯 가지 감사거리를 일기에 쓰면서 캄캄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참척(慘慽)의 고통 속에서도, 죽을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로 승화시킨 이들의 삶의 궤적 앞에 경의를 표한다.

성경은 권면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최근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공감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심연의 고통과 절망이 허우적거리는 동굴이 아니라 언젠가는 나가게 될 터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터널을 빠져나가면 한 줄기 빛을 볼 수 있을 거란 희망 한 자락이 있다면 그렇게 삶을 포기하진 않았을 거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누군가는 “죽음, 그 두 글자는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담지 못했던 단어입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라며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함부로 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이명희 종교국 부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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