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법안소위 패싱 유감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일하면서 많이 찾는 텍스트 중 하나는 국회 회의록이다. 국회 회의록 시스템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회의에서 오간 말이 기록으로 남는다. 그중 취재에 가장 도움이 되는 건 각 상임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이다. 법안심사소위는 발의된 법 제정안과 개정안을 논의하는 공식적인 첫 관문이다. 곧바로 중계되지 않지만 며칠 후 공개되는 회의록에는 참석자들의 말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회의록을 보면서 종종 놀랄 때가 있는데 평소 자질을 의심했던 의원이 법안소위에서는 꽤 합리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소위의 논의 수준은 높은 편이어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눈총받을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소위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합심해 정부 부처의 차관이나 실·국장에게 쓴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보기 힘든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가 소위에서 이뤄진다. 소위는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결론을 내지 못하는 합의제로 운영돼 소수의 의견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여야 의원들이 진통을 겪으면서 타협하고 절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국회가 정쟁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세금이 허투루 쓰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4일 막을 내린 7월 임시국회에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대다수는 법안심사소위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이날 본회의에서 통과된 ‘부동산세법’(종합부동산세법·법인세법·소득세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후속법 등은 법안소위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통과된 주택임대차보호법도 법안소위 논의 절차가 생략됐다. 7월 국회에서 소위를 거친 법안은 체육계 폭력 방지를 위한 ‘최숙현법’(국민체육진흥법 등)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안소위가 구성되지 않았고 미래통합당에 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핑계로만 들린다. 합의 처리 의사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소위를 구성했을 것이다.

법안소위를 건너뛴 행위는 민주당이 내건 ‘일하는 국회’와 다르다. 민주당 의원 176명은 지난달 14일 일하는 국회를 구현하겠다며 국회법 개정안을 냈다. 이 법안에는 상임위와 소위를 매월 4차례 이상 열고 특히 복수 상설소위를 설치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처리할 법안이 많으므로 소위를 활성화하겠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소위에 표결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았다. 과반의 힘을 발휘하려는 속셈으로 보이지만 소위를 열지 않음으로써 야당에 표결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민주당은 개원 협상에서 야당과 합의한 ‘상임위별 법안심사소위 내 안건 합의처리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

법안소위 무력화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민주당은 여러 법안의 단독 처리에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임대차보호법 단독 처리에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법이 통과된 뒤 ‘이번에는 시급해 절차를 다소 무시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사과를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앞으로도 자신들이 시급하다고 판단하는 법안은 단독 처리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부겸 민주당 당대표 후보는 최근 야당의 ‘의회 독재’ 비판에 “독재란 말은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안심사소위라는 절차적 민주주의 제도를 과반의 힘으로 무력화시킨 것은 독재에 해당한다. ‘독재’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특정한 개인, 단체, 계급, 당파 따위가 어떤 분야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함’이라고 나온다. 특정 정당인 민주당은 입법 분야에서 과반인 176석이라는 권력을 차지해 여러 법을 독단으로 처리하고 있다. 사전적 정의에 이보다 더 부합할 수 없다.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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