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집콕에 집밥 물린다고?… 맛은 창조하는 것!

식품업계 ‘모디슈머’ 마케팅 활발

서울 중구 CJ제일제당 내 ‘CJ더키친’에서 배현우(31·왼쪽부터) 셰프, 허나은(27) 셰프, 명호민(31) 셰프가 지난 3일 새로운 레시피를 연구하고 있다. CJ제일제당 제공

코로나19로 유례없이 길어진 ‘집콕’ 생활과 비슷비슷한 집밥에 지친 소비자들이 늘면서 ‘모디슈머’(modify+consumer·다양한 제품을 조합해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는 소비자들)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식품업계는 새로운 레시피를 제안하거나 모디슈머들이 만들어낸 이색 레시피를 제품으로 내놓으며 소비자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가 올해 컵라면으로 출시되고 ‘진진짜라’(진짬뽕+진짜장) 레시피가 신제품으로 출시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HMR시장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CJ제일제당에는 자사 제품을 활용한 응용 레시피를 일년에 600개 이상 만들어내는 ‘레시피마케팅팀’이 있다. 이 팀의 모토는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소통하며 모든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쉽고 간편한 레시피를 제안하자’는 것이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의 CJ더키친에서 만난 레시피마케팅팀의 허나은(27) 셰프는 “때를 가리지 않고 레시피를 생각하다보니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땐 자다 일어나서 메모장에 아이디어를 적어놓고 다시 잔다”고 말했다.

자나깨나 이색 레시피를 고민하는 레시피마케팅팀은 김수진(40) 팀장과 5명의 셰프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다. 이 팀은 이마트,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 할인점에서 진행하는 시식 행사에 셰프가 직접 나와 레시피를 제안하고 소비자들과 소통하며 행사에 변화를 주기 위해 2009년 만들어졌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약간 주춤한 상황이지만 SNS채널(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국내외 행사를 통해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모디슈머 마케팅의 핵심은 ‘간편함’과 ‘새로움’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있거나 관심을 가질 만한 새로운 레시피를 쉽고 간편하게 따라할 수 있도록 빠르게 개발해내는 게 중요하다. “요즘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메뉴가 다양하다보니 소비자들도 여기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그 흐름을 캐치해 저희 제품과 엮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러면서도 버려지는 스팸 뚜껑을 도마처럼 활용해 ‘아코디언 스팸’을 만들 수 있다고 알려주는 식의 간편한 요리 방법까지 함께 제안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배현우 셰프·31)

최근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시다를 활용해 요리를 하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마법의 가루’가 유행하자 레시피마케팅팀도 ‘비법 냉면육수’ 레시피를 곧바로 개발해 SNS에 공유했다. 명호민(31) 셰프는 “오히려 다시다를 숨기지 않고 노출하는 데서 소비심리가 더 자극된 듯하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요리에 대한 허들이 낮아지면서 식재료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지고 활용 범위도 넓어진 것 같다. 이처럼 다시다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다보니 다시다를 활용한 메뉴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김 팀장)

‘행복한콩 두부볼 명란마요 꼬치’, 비비고 죽으로 만든 아이스바와 셰이크, ‘BYO 유산균 쁘띠첼 미초 요거트바’(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CJ제일제당 제공

레시피마케팅팀은 최근 출시된 신제품 비비고 흑임자죽, 단호박죽, 통단팥죽을 얼려 구슬팥빙수, 아이스바, 블랙큐브라떼, 쉐이크 등의 디저트로 활용할 수 있는 레시피를 개발했다. 김 팀장은 “보통 죽은 겨울에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저희는 죽을 얼려서 여름에도 트렌디하게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제안했다. 약간의 시간과 재료를 추가해 조금 더 분위기 있고 맛있는 메뉴를 먹고 싶어 하는 1인 가구의 니즈를 겨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해 탄생한 이색 레시피에는 ‘홈술’족을 겨냥한 ‘컨디션 젤리워터’(쁘띠첼 워터젤리+박카스+쁘띠첼 구미젤리)와 ‘젤리비어’(쁘띠첼 워터젤리+맥주 ‘블랑’), ‘미초소주칵테일’(쁘띠첼 미초+소주) 등이 있다.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해먹는 1인 가구부터 어른과 어린이가 섞여있는 한 가족까지 모든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레시피를 다양하게 개발하기 위해 레시피마케팅팀은 정기적으로 품평회를 열고 한 셰프당 최소 2개 이상의 레시피를 제안하고 있다.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도 기존에 없는 레시피를 생각해내기 위해 5명의 셰프는 각자의 방식대로 서점을 방문해 책을 찾아보거나 맛집으로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가고, 기존 레시피에서 크게 벗어난 재료들을 조합하거나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김 팀장은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 중 하나다. 최대한 다양한 레시피를 생각해내야 하기 때문에 팀 자체적으로 허들을 높여놓고 각자의 레시피로 경쟁하는 방식으로 품평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팀 내부의 치열한 경쟁과 개발을 통해 탄생한 ‘비비콘’(아이스크림 콘 모양의 비빔밥)은 2018년 진행된 PGA투어 ‘더 CJ컵’에서 화제를 모으고 글로벌 시장으로 번져나가기도 했다. 많은 주목을 받았던 비비콘이지만 개발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비빔밥을 삼각형 모양으로 유지하기 위해 비빔밥을 싸는 겉재료를 누룽지부터 또띠아, 또띠아에 김을 붙여보기도 하다가 결국엔 라이스페이퍼에 김을 붙이는 방식으로 완성해냈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만큼 팀원들에게도 애착이 가는 메뉴가 됐다.

레시피마케팅팀은 레시피계의 방탄소년단(BTS)이 되자는 목표를 세웠다. 허 셰프는 “BTS가 되자는 건 도전적으로 제시한 목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BTS만큼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요즘 화장품업계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테스트매장으로 운영하고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처럼 식품업계에서도 오프라인 팝업스토어를 통해 홍보하고 온라인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방향으로 도전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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