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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법’에도… 부산 정신병원 의사, 또 흉기에 희생

“퇴원 문제로 앙심 품고 범행” 진술… 흉기로 찌르고 인화 물질 뿌리고 난동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정신과 의사가 치료하던 환자에게 살해당하는 참사가 재발했다. 2년 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과 판박이다. 정부가 ‘제2의 비극’을 막겠다며 시행한 ‘임세원법’은 유명무실했던 셈이다.

부산 북부경찰서는 50대 정신과 의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60대 정신병 환자 A씨를 입건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오전 9시25분쯤 자신이 입원해 있는 부산 북구 화명동 한 신경정신과 전문병원에서 담당 의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의사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범행 뒤 A씨는 병원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10층 창문 안쪽에 매달려 난동을 부렸다. 경찰은 한참 대치 끝에야 A씨를 체포했다. 검거 직후 A씨는 “퇴원 문제로 의사에게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평소 병원 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의료진 지시를 따르지 않아 해당 의사로부터 퇴원 요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잠시 외출해 범행 흉기와 휘발유를 직접 사온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병원은 정신과 의사가 숨진 의사 1명인 소규모 병원이었다. 외출 등도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지난 6월 입원했고, 조현병을 앓지는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퇴원 문제로 의사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범행 동기는 조사해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2018년 12월 31일 발생한 임세원 사건과 흡사하다. 강북삼성병원에 외래진료를 받으러 온 조현병 환자 박모(30)씨가 자신을 상담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임 교수를 흉기로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다. 의료인이 환자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을 줬다. 대한의사협회는 환자에 의한 의료진 폭행을 막을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국회는 이듬해 4월 ‘임세원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켜 의료진 폭행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였다. 의료진을 폭행해 상해에 이르게 하면 7년 이하의 징역, 사망에 이르게 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6개월 뒤인 10월 24일부로 시행됐지만, 그 뒤에도 환자가 의사에게 주먹이나 흉기를 휘두르는 범죄는 끊이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 임세원법의 후속 입법 격으로 병원 안전을 강화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100실 병상 이상의 의료기관에 경찰과 연결된 비상벨을 설치하고 1명 이상의 보안인력을 배치토록 의무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시행규칙은 지난 4월 24일 시행됐지만 보안장비 설치와 보안인력 배치는 시행일로부터 6개월 안에 완료하도록 유예기간을 줬다.

임세원법의 도입에도 비극은 되풀이됐다. 특히 이번 사건이 벌어진 부산 정신병원은 규모가 작아 애초 임세원법의 ‘병원 안전 강화 대책’에서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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