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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낙연의 모험

손병호 논설위원


이 전 총리 당대표 당선되면 ‘중전마마’ 이미지 극복 기회지만
오합지졸 與 이끌긴 쉽지않아
잘 버티면 대선주자 굳히겠지만 상처 입으면 경쟁에서 밀릴 수도
‘이낙연 매직’ 펼쳐질지 주목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 대한 품평 중에 가장 귀에 쏙 들어온 게 최근 정청래 민주당 의원한테서 들은 말이다. 평소에도 주저하지 않고 생각한 걸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정 의원은 이 전 총리 리더십에 대해 영락없는 ‘중전마마 리더십’이라고 규정했다. 목소리는 물론, 정치적 행보까지 온통 근엄한 모습으로만 어필하려 하고, 실수하지 않으려 조심조심하는 게 꼭 중전마마 같다는 것이다. 리더로서 안정감이 있고 중후해 보이지만, 아무래도 참신성이나 진취성은 부족하다는 표현일 테다. 그래서 정 의원은 이 전 총리에게 그런 리더십으로는 대권을 쟁취하기 어려우니 당대표로 출마해 산전수전 다 겪으며 상처도 나고 아물기도 하면서 돌파력을 보여줘야 중전 리더십의 부정적 측면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출마를 권유한 정 의원과는 반대로 여권의 다른 핵심 인사는 이 전 총리가 당대표로 나선 데 대해 걱정하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는 이해찬 현 대표가 워낙 노련해 대야(對野) 대응력이 뛰어나고, 당을 꽉 틀어쥐고 있어서 좌충우돌하기 쉬운 민주당을 잘 이끌어왔지만, 차기 대표는 결코 이런 오합지졸의 여당을 이끌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실제로 벌써부터 몇몇 ‘코돌이’(코로나19 덕에 당선된 초선들)들은 통제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면서 이 대표와 이 전 총리의 리더십이 비교되면서 자칫 이 전 총리로선 당대표를 하면서 그간 쌓아온 점수를 까먹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두 사람이 언급한 공통점은 이 전 총리에게 당대표직이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의 자리가 될 것이란 점이다. 중전마마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면 당대표를 해야 하겠지만, 대표를 하는 동안 상처가 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선 치명상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전 총리를 두고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이겠지만, 잘못했다간 ‘이대만’(이대로 대표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실 7개월짜리 당대표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검찰 개혁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권력기관 개편안, 부동산 대책 마련 등 피 묻히는 일은 현 지도부가 다 해놓은 상태다. 진영을 위해 피를 묻혀야 당에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고, 핵심 지지층한테 점수를 딸 텐데 그럴 만한 일이 별로 안 남아 있다. 그렇다고 재임 기간 선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전 총리가 대표가 되면 당 대선 경선 규정에 따라 내년 4월 보궐선거 전에 그만둬야 한다.

정부와의 관계 설정도 골치 아픈 일이 될 수 있다. 이해찬 대표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정부쪽 인사들, 심지어 청와대 사람들도 벌벌 떨게 만들어 당정청 간 잡음이 없게 했지만 이 전 총리가 대표가 될 경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정세균 총리와 대선 주자로서 경쟁을 벌여야 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날 여지가 있고, 크게 충돌하면 둘 중 한 명은 대선 레이스에서 나가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 총리뿐 아니라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등 다른 주자들도 그를 견제할 게 뻔하다. 그래서 여당 주변에서는 유력한 대선 주자들이 서로 상처를 입지 않도록 이번에는 김부겸 의원이 당대표가 돼야 한다는 얘기가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이 전 총리가 대표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그가 리스크 많은 자리를 점수를 조금만 까먹고 잘 버텨내기만 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여당의 가장 확고한 대선 주자로서 굳히기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대박을 칠 수도, 경우에 따라 쪽박을 찰 수도 있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 자리인 것이다. 안전한 길을 놔두고 그런 모험에 나선 것 자체가 이 전 총리답지 않은 새로운 면모라고 좋게 평가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대만’이 되지 않기 위한 여정은 그의 정치 인생에서 최대 고비가 될 수도 있다.

그가 최근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을 직접 비판한 것도 당내 최대주주인 친문재인계를 의식하며 벌써부터 수익률 관리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경선은 안 끝났지만 이 전 총리의 당권 정치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당선될 경우 그의 당권 정치가 어떻게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측근들 바람대로 ‘이낙연의 매직(마술)’이 나올 수 있을까.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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