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월세 사는 나라 될까… 기로에 놓인 전세의 미래 [이슈&탐사]

“집주인 93% 일부 반환 능력”… 전세→월세 길목 ‘반전세’ 늘 듯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과 윤희숙 미래통합다 의원. 연합뉴스

“이 법 때문에 전세는 너무나 빠르게 소멸되는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 지난달 30일 국회 연설에서)

“전세 임대인의 자금 여력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므로 월세로의 전환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지난 4일 언론 인터뷰에서)

임대료 인상 5% 상한과 계약갱신청구권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이후 전세 제도의 미래에 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김 장관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전세가 급격히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야당과 상당수 부동산 전문가는 전세 소멸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한다. ‘모두가 월세 사는 나라’가 올 것이라는 예측은 여권에서도 나온다.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다는 전세 제도는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국민일보 취재팀이 최근 서울 강남과 목동, 마포, 가양동의 부동산 중개업소를 방문 취재한 결과 전세 물건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전세 소멸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부동산 관계자가 적지 않았다. 서울 마포구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윤선화 서울글로벌부동산협회장은 6일 “(집주인들이) 돈이 부족해 갭투자를 한 건데 반전세나 월세로 돌릴 수 있는 집주인은 많지 않다”며 “단기간에 (월세로의 전환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갭투자에서 집주인은 차익을 노리고 전세 끼고 산 사람들”이라며 “결국 빚인데 (정부 부동산 정책으로) 대출까지 막히면서 갭을 메우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목동의 제일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만난 정모(66·여)씨는 “강남처럼 현금을 많이 가진 부자들이 많으면 (전세에서) 월세로 돌릴 수 있겠지만 (목동은) 현금 부자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서구 가양동의 늘푸른부동산 관계자도 “우리나라 집주인들은 새로운 세입자한테 보증금을 받아 기존 세입자한테 준다. 새 전세 세입자가 안 구해지면 돈을 못 주는 상황이라 전세가 줄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 능력이 있는 집주인이 많지 않으므로 전세 제도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는 얘기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2018년 기준)에 따르면 임대 가구의 평균 금융 부채는 1억1000만원으로 전체 가구(5000만원)의 2배가 넘었다. 임대가구는 일반 가구보다 빚이 더 많으므로 보증금 반환이 어려울 수 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 늘고 있는 것도 임대인의 자금 능력을 추정할 수 있게 해주는 지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연도별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및 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년 27건이던 보증사고 건수는 2018년 372건, 2019년 1630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올해는 7월까지 1495건으로 지난해 전체 사고 건수에 육박했다. 2013년 시작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제도는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HUG가 대신 반환 책임을 이행하는 제도다.


수요 차원에서 여전히 전세 선호 현상이 강하다는 점도 고려돼야 할 요소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원칙적으로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힘이 작동하긴 한다”면서도 “수요 측면에서 고용 불안정과 은퇴로 정기적인 월세를 낼 수 없는 세입자들이 전세를 여전히 선호한다”고 말했다. 영세 주택개발업자들이 선분양과 전세 보증금을 이용해 주택을 짓는다는 점도 전세의 월세로의 전환을 가로막는 변수다. 조 교수는 “전세 보증금이 중요한 비공식적 개발금융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의 공인중개사 A씨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지난달 31일 전세 낀 아파트를 50분 만에 판매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해당 아파트 집주인은 오는 10월 전세 기간이 만료되는 집에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기로 했다가 법 시행 직후 마음을 바꿨다. 계약서를 쓰기로 한 약속 1시간 전 전화를 걸어와 “급매로 집을 내놔 달라”고 했다. 중개사 A씨는 “바뀐 법 탓에 앞으로는 전세를 끼고 집을 팔기 힘들다고 집주인이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사례는 일부 임대인에게 전세 보증금이 적지 않은 부담임을 보여준다.

집주인 자금 능력 검증된 적 없어

그렇지만 모든 전세 주택 집주인의 보증금 반환 여력 여부는 한 번도 숫자로 검증된 적이 없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서울에 임대하는 가구 중 갭투자를 위해 집을 구입한 경우가 많다. 50%가 넘는다. 강남 지역은 올봄 70% 정도가 갭투기로 산 주택을 임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갭투자’ 수치는 ‘자금조달 및 입주계획서’상 임차인의 보증금을 승계해 주택을 구입하면서 본인이 입주는 하지 않은 거래 형태의 비율이다. 정확히 서울은 53.8%(2018년 기준)다. 김 장관 말의 취지는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집을 산 사람의 절반은 투기 목적으로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해 보증금 반환이 어려워 월세 전환을 할 수 없다’다. 하지만 50% 모두 투기 목적으로 구입을 했더라도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구입한 사람의 자금 사정을 다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대출 없이 현금으로 집을 보유할 수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 수치가 반환 능력이 없는 숫자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자금 여력이 충분한 임대인도 많으므로 보증금 반환이 월세 전환 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고가 주택의 집주인은 전세 보증금 일부나 전부를 돌려주고 월세로 전환하는 방식에 거부감이 크지 않다고 한다. 서울 대치동의 H부동산 관계자는 “한 집주인은 ‘세입자가 2년 뒤(계약 갱신 시) 월세 전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으니 이번 신규 계약에서 월세로 돌리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며 “대출이나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든 보증금을 마련하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전세 물량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월세 수요가 생겨나는 것도 ‘전세 소멸’ 시계를 빠르게 돌리고 있다. 대치동, 목동 등 인기 학군지에서는 고가의 월세 계약도 인기가 높다. ‘월세 계약이라도 원한다’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액 월세 세입자 중에는 임차인이면서 동시에 임대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은 자신이 세를 주고 있는 집에서 월세를 받아 거주하고 있는 집의 월세에 보태면 된다는 태도를 보인다.

서울 목동의 D부동산 관계자는 “과거엔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210만원짜리 반전세 물건은 워낙 고가여서 계약이 잘 안 됐지만 최근에는 문의가 꽤 많이 온다. 순수한 ‘내 돈’으로 월세를 내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집을 임대하고 남의 집을 임차해 사는 경우 임대 수입을 이용해 ‘월세 전환 도미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집주인 90%, 보증금 10% 반환 가능”

집주인들의 보증금 반환 능력이 시장의 통념보다 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3월 발표한 ‘최근 전세 시장 상황 및 관련 영향 점검’ 보고서에서 ‘전셋값이 하락하더라도 상당수 집주인은 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2018년 기준 211만 주택임대가구의 금융자산 대비 보증금이 78.0%라고 공개했다. 평균 보증금이 임대인의 금융자산을 넘어서지 않으므로 돌려줄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집주인들이 임대로만 돈을 버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임대인의 고소득자(소득 4~5분위) 비율은 64.1%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임대 가구 대부분이 보유 금융자산 처분 및 금융기관 차입을 통해 보증금 일부 반환이 가능한 것으로 봤다. 전셋값이 10% 하락하더라도 임대 가구의 92.9%(196만 가구)는 현금이나 예·적금, 주식 등 금융자산을 처분하는 것만으로 그에 해당하는 보증금 10%를 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보증금에서 10%를 줄이고 그만큼을 월세로 전환하는 보증부월세로의 전환이 대부분 가구에서 언제든 가능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10억원짜리 전세 계약이라면 보증금 9억원에 월세 33만원(전월세전환율 4% 적용)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은행은 보증금 전액을 금융자산으로 반환할 수 있는 임대 가구는 59.1%(124만7000가구)일 것으로 봤다. 다만 한국은행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는 전셋값 하락으로 보증금을 반드시 돌려줘야 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작성한 것”이라며 “집주인이 월세 전환을 위해 자발적으로 보증금을 내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0%대 초저금리 시대’도 집주인으로 하여금 월세 전환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집주인들은 전세 보증금을 운용해 수익을 내기보다 예금 이자보다 높은 월세 받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정부는 전세의 월세 전환을 막기 위해 현재 4%인 전월세전환율을 낮추겠다는 입장이지만 시중 금리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월세 선호 현상을 완전히 틀어막기는 어렵다. 국민일보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8월 4일 1·4면 참조)에서도 앞으로 전세 계약을 반전세·월세로 바꾸겠다는 응답자의 7.4%는 ‘저금리’를 세금이나 규제보다 더 큰 이유로 꼽았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금리가 워낙 낮은 상황이기 때문에 대출을 받아서 보증금을 빼 주고 월세를 받는 형태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보증부월세(반전세)부터 늘어날 것”

전세의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변수는 집값의 방향이다. 전세 제도는 주택가격이 오른다는 전제하에 작동해왔다. 집주인에게 전세 보증금은 2년 후 돌려줘야 할 무이자 대출금, 즉 빚이다. 집값이 계속 상승하는 상황에서는 전세 보증금을 보태 집을 사도 매매 차익이 남는 구조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집값이 오르면 전세가가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승장에서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이 낮아질 수는 있지만 전셋값 자체가 하락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집값이 안정화되거나 하락한다면 월세 수입을 원하는 집주인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당장 매매가가 올라가지 않으므로 당장의 월세 수입을 더 매력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미 시장에서 월세로의 전환 움직임은 진행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 추세를 되돌리기는 힘들다는 사실이다. 거주 형태 중 보증부월세와 월세의 비율은 2008년 각각 14.8%, 1.9%에서 지난해 19.7%, 3.3%로 증가했다. 전세에 거주하는 비율은 22.3%에서 15.1%로 감소했다. 관건은 속도인데 최근 정부의 여러 부동산 정책이 월세 시대를 가속화한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일각에서는 ‘월세’를 보증부월세(반전세)와 순수한 월세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전세 보증금을 받지 않는 순수한 월세가 당장 많아진다기보다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움직임이 커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시장에서 우려하듯 한 번에 순수 월세로 전환된다든지 전세가 완전 씨가 마를 것이라는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라며 “일부 보증부월세로 전환하는 현상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대차 3법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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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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