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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강청함의 비유(3)

누가복음 11장 5~13절


강청함으로 기도하는 것은 끈질기게 떼를 쓰면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열심만 강조하여 기도하는 것은 소용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이 지속적인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성도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가르치고 있고,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는 기도를 세 번 연속하셨던 것을 볼 수 있다.(눅 22:42)

그러면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과 떼를 쓰며 하는 기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도의 목적에 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이유는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한 방법적인 차원’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성경의 어떤 구절도 ‘기도의 양에 따라 내 소원의 응답 여부가 결정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도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해야 한다는 ‘기도의 양’이 중요함을 강조한 구절은 많이 있다. 왜 기도의 양이 중요한가. 기도의 양이 쌓여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뜻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또 기도의 양이 쌓일수록 세상의 근심과 걱정에서 자유함을 입을 수 있다. 왜냐하면 바른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도의 양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본문에도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시며 구하면 받고, 찾으면 찾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 말씀하셨다.(9~10절) 이것은 지속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우리가 기도하면 구한 바를 받고, 찾고 열린다는 것에 있지 않다. 내가 구하고 찾았을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셨는지가 중요하다.

성경은 열심을 다해 구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가 가진 모든 소원, 그 어떤 바람 그대로 주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마음을 다해 지속해서 기도하면 ‘좋은 것’을 주신다고 말한다.(13절)

이는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얘기이다. 우리는 내가 구하는 것이 뱀인지, 전갈인지 모르고 구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이 아닌, 우리의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하는 그 대상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곧 천부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성경은 그 좋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명시하고 있다. 그것은 ‘성령’이라고 얘기한다.(13절) 그렇다. 기도의 양이 채워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만일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확인한다면 기도의 내용이 바뀌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냥 무턱대고 내 소원을 놓고 떼를 쓰며 구하는 아집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이루실 역사에 대해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 중심의 기도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기대에 소원을 두는 기도로 변화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강청 기도’의 본뜻이다.

우리는 이 강청 기도의 바른 의미를 통해 기도에 대한 새로운 시각, 또 마땅한 도전들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다. 이렇게 많은 이론과 정의를 숙지할지라도 우리 삶 속에 기도가 경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종이에 담긴 공론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도의 풍성함을 체험할 때 가난한 신앙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한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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