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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긴 장마… “숨 막혀” 집단 우울증에 빠진 대한민국

휴가 시즌에도 야외 활동 잘 못해… 무기력증·잦은 감정기복 시달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33)씨는 지난달부터 극심한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유 없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짜증내는 일도 많아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이어 역대급 장마까지 겹치면서 유일한 취미생활이던 캠핑조차 나서지 못하는 중이다.

박씨는 11일 “몸이 힘들어서 지난주에 여름 휴가를 냈는데 물난리로 캠핑을 나갈 상황이 아니라서 결국 집에만 박혀 지냈다”며 “사방이 꽉 막힌 느낌인데 우울증 초기 증세가 아닌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감염병과 장마가 동시에 덮치면서 우울감과 고립감을 동시에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정상적인 외부활동 제약으로 ‘코로나 블루’(코로나19에 의한 우울증)에 이은 ‘장마 블루’(장마에 의한 우울증)까지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주말마다 농구 동호회를 나가던 직장인 황모(37)씨는 부쩍 나빠진 건강이 걱정이다. 코로나19로 서울시가 운영하는 모든 공공실내체육시설이 문을 닫은 데 이어 장마로 야외 농구장마저 사용이 불가능해진 탓이다. 황씨는 유일한 스트레스 배출구가 사라지니 늦은 시각 야식을 먹거나 주말에 잠만 자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일도 많아졌는데 몸 상태가 나빠져서 그런지 감정기복도 심하다”고 설명했다.

1학기를 통째로 집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던 대학생들도 여름방학에 찾아온 장마가 야속하기만 하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김모(21·여)씨는 “코로나19와 장마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어서 더 우울한 것 같다”며 “학기 중에 잘 만나지 못한 대학 친구들과 지난 주말에 남해안 여행을 다녀오기로 계획했었는데 결국 가지 못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장마 블루는 올해에 처음 찾아온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일조량이 감소하고 활동량이 줄면서 우울증 환자는 매년 장마철마다 증가해 왔다는 것이 전문가들 설명이다. 다만 코로나19로 지칠대로 지친 시민들이 사상 최장으로 기록된 역대급 장마에 예년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됐다는 점이 문제다. 홍수와 산사태로 늘어나는 이재민과 사망·실종자들의 안타까운 소식도 장마 블루를 확산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각국의 연구를 통해서도 홍수와 인간의 심리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홍수를 겪고 나서 향정신성의약품이나 알코올, 담배 판매량이 늘었다는 보고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줄어든 햇볕이 들지 않는 흐린 날씨라 하더라도 야외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바깥 활동이 적은 전업주부나 노인들은 특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당부하면서 “비가 오더라도 야외로 나가서 산책을 하고 실내에서는 최대한 조명을 밝게 유지하는 게 우울증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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