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나는 나약하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고백

류응렬 목사의 창세기 산책 <15>

류응렬 미국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목사(오른쪽)와 주일학교 교사들이 지난 8일 교회에서 열린 ‘드라이브인 졸업식’에서 학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선교를 다녀온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는 금지된 지역이고 위험한 땅이지만, 그곳의 영혼들을 품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기도하고 단기선교를 갔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어느 집에 들어갔는데, 마침 군 장군의 집이었고 집주인과 아들은 나그네와 같은 외국인을 극진하게 대접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이 필요한 이슬람권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겐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방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세 사람을 발견하고 극진히 대접합니다. 아브라함의 환대는 몇 가지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급히 그들에게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굽힙니다. 둘째, 발 씻을 물을 가져오고 쉬기를 청합니다. 셋째, 급히 장막에 들어가 떡을 준비합니다. 넷째, 좋은 송아지를 잡아 급히 요리합니다. 아브라함은 현재 이 나그네들이 하나님의 천사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나그네를 대접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에 그의 삶과 인격이 잘 드러납니다.

왜 하나님이 천사들과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을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친밀한 교제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아브라함에게 오셔서 함께 먹고 마시는 것보다 친밀한 교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불완전한 모습으로 넘어지기도 했던 아브라함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좋아하셨고 그를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길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의 백성과 친밀하게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매 순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를 통해 주님과 대화하고, 섬김을 통해 주님의 향기를 전하길 원하십니다.

이삭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천사들은 아브라함에게 장차 일어날 일들을 말해 줍니다. 내년 이때가 되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약속과 달리 구체적인 시기를 말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 줍니다.

장막문 뒤에서 이 말을 들은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사라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나 아름다운 소식이었지만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늙었고 생리도 끊긴 상태였습니다. 사라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내년이면 자신은 90세가 되고 남편은 100세가 되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겠습니까. 지금쯤 사라도 오랫동안 품었던 아들에 대한 소망을 포기한 지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사라의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상식입니다. 이때 ‘아멘’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상황에도 약속하시는 하나님이 친히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속으로 웃는 사라를 책망하십니다.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그러고는 상식을 뛰어넘는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자기 생각을 읽으신 하나님께 두려운 마음으로 사라가 대답합니다.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하나님과 사라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참 재미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맙지만,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면서 있는 그대로 반응한 사라, 그런 사라에게 웃었다며 말씀을 다시 확증하시는 하나님. 마치 꽃병을 깨뜨리고 모른 척하는 아이와 대화하는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비난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현실에 근거한 자연스러운 반응을 기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뛰어넘는 믿음의 반응을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최선의 반응이 아니라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100세가 되는 아브라함과 90세가 되는 사라지만, 하나님은 모든 불신을 한순간에 뒤엎는 선포를 하십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닫힌 세상의 체계에 갇히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흐름과 자연의 이치 그리고 인간의 환경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을 믿는 것입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키실 뿐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의 한계를 넘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다면 반드시 하십니다. 믿음은, 자신을 바라볼 때는 나약해지고 실망과 절망에 이를지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나는 불가능하고 절망적인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씀은 모든 불신을 뒤집는 한마디입니다.

(미국 와싱톤중앙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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