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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대통령의 말

한승주 논설위원


임대차 3법 의도는 좋았으나
전세가격 치솟고 물량 품귀
대책 나올 때마다 집값 올라
주택 시장 안정되고 있다는
대통령의 말은 현장과 괴리
가뜩이나 성난 민심에 불 질러
무조건 내가 옳다는 건 위험
국민 눈높이에서 바라봐야


눈여겨보던 아파트 단지에 전세가 나왔다고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보러 가던 중이었다. 몇 개월을 기다려 드디어 나온 집이다. 지하철역에 내려 걸음을 재촉하는 중에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그 집 지금 사는 분들이 계속 살기로 했다네요. 아, 이런. 그 아파트는 포기하고 인근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얼마 후 전세가 나왔다고 해서 애들까지 데리고 가던 중 또 전화가 왔다. 좀 전에 보고 간 사람이 가계약금 보냈다네요. 아, 또.

전세가가 오른 것도 문제지만 물량 자체가 없었다. 그게 더 힘들게 했다. 결국 원래 생각했던 곳 말고 다른 동네까지 넓혀 매물을 찾았다. 마침 나왔다는 귀한 전세. 보자마자 바로 다음 날 결정했다. 서울에서 전세 구하기,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임대차 3법이 시행된 후 전세가는 치솟았다. 같은 아파트 같은 평형인데 새로 나온 전세는 2억원이 더 나갔다. 서울 강남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며칠 사이에 전세가가 1억원 넘게, 그다음 주는 2억원이나 높게 불리는 걸 보며 미쳤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임대차 3법은 분명 좋은 의도로 시작됐다. 서민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같은 집에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일시적인 부작용인지 모르겠지만 현장에선 억 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 실거주 요건 강화로 집주인이 들어가 살겠다는 곳이 많아지면서 물량은 귀해지고 있다. 이번에 계약하면 최소 4년은 전세가를 조금밖에 못 올린다고 생각하는 집주인은 이참에 대폭 올려 받겠다는 분위기다. 이미 살고 있는 임차인도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다행히 한 번의 재계약 기회가 있지만 그다음 계약 때는 이 집에 살 수 없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비싼 집을 가진 사람은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며 울상이다.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오르기만 한다.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대책, 실패인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대통령의 말은 성난 민심에 불을 질렀다. “부동산 대책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과열 현상을 빚던 주택 시장이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장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부동산 민심을 읽었다면 최소한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는 사과는 있어야 했다. 설령 집값이 잡히고 있다손 치더라도 이번 대책으로 화가 많이 난 민심을 달랬어야 했다. 실제 아파트값은 어떤가.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현 정부 들어 가파르게 올라 평균 매매가격이 2017년 말 7억원에서 사상 처음으로 10억원을 돌파했다. 전국 전셋값은 56주 연속 올랐고 특히 8월 첫째 주 상승률은 34개월 새 가장 높았다.

국민 체감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말은 경제 정책에도 나타난다. “확장 재정에 의한 신속한 경기 대책과 한국판 뉴딜의 강력한 추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올해 경제성장률 1위로 예상될 만큼 가장 선방하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수치상으로 맞는 말이다. 문제는 현실 체감이다. 끝이 안 보이는 코로나로 인한 대량 실직 사태, 영세 자영업자의 줄도산. 경제 버팀목인 수출 하락세는 심각한 지경이고, 재정수지 적자도 사상 최대 규모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경제가 괜찮다고 하니 이를 듣는 국민의 심기가 편치 않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중요하다. 경제지표가 나아졌더라도 몇 개월째 일자리가 없어 생계를 꾸리지 못하는 사람들, 가장 낮은 곳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한다. 코로나에 집중호우까지 겹쳐 서민들의 마음이 타들어간다. 물난리에서 겨우 건져낸 세간을 보며 한숨 쉬고 있다. 희망을 주기 위한 메시지였을지 몰라도 각박한 현실에 와 닿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수치는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상황이 좀 나아지는 듯 보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의 신호로 읽힐 수도 있다. 대통령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안 된다. 주변 참모들도 마찬가지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무조건 내가 옳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게 훌륭한 리더의 모습일 것이다. 취임 일성으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했었기에 요즘 대통령의 말은 실망스럽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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