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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모두의 기후 감수성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기후위기에 대해 시민단체나 종교단체에서 강연하면 함께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공무원들이나 이 세상에 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면 그렇지가 않아요. ‘내가 이 사람들만 설득하면 세상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지만 아직 그렇게 못하고 있네요.”

54일간 이어졌던 역대 최장의 장마 기간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인터뷰했다. 차분하면서도 강하게 기후변화의 위험을 역설한 조 전 원장의 인터뷰는 100만 페이지뷰(PV·온라인에서 기사가 읽힌 횟수)에 육박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국민 50명 가운데 1명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셈이다.

코로나19와 장마, 뒤이어 시작된 폭염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과 감수성은 부쩍 높아졌다. 장마 동안에는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라는 해시태그운동이 온라인을 달궜다. 맘카페부터 부동산 카페, 자동차 동호회 회원들까지 김지은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이 주도해 만든 이 문장을 담은 폭우 이미지를 부지런히 퍼 날랐다.

TV에는 쓰레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캠페인을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코로나19 기사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식벤져스’는 광장시장에서 육회 위에 달걀노른자만 올리고 버려지는 흰자로 만든 머랭만두, 감자껍질을 활용한 아이스크림 등 셰프들이 자투리 식재료로 새 메뉴를 개발해 손님을 대접하는 콘셉트였다. 손님들은 음식을 남기지 않고 개인 식기나 텀블러를 챙겨와 프로그램의 취지에 호응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에어컨은 적정온도로 켜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소고기를 적게 먹으라는 환경운동가들의 주문에 맞춰 생활 습관을 바꾸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조 전 원장은 인터뷰에서 “욕망의 과잉, 맘몬(돈·물질에 대한 우상)을 부수라”고 강조했다. “앞으로는 우리가 지금 쓰는 것보다 훨씬 적은 자원으로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파타고니아라는 미국 의류 브랜드는 한번 옷을 사면 평생 입게 한다고 평생 수선을 해줍니다. 유니클로 같은 패스트 패션은 1~2년 입고 버리죠?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처럼 자원을 덜 쓰면서 유지하고 순환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절제와 검소를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는 건 아니다. 조 전 원장은 “기후위기는 나만 바뀌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개인의 감수성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기후위기 문제를 풀기 어려운 것은 경제성장과 이산화탄소의 증가가 비례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최우선 순위에서 경제성장을 끌어내리는 가치관의 대전환과 정책의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가 김훈 선생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이와 상통했다. “가난하고 불편해지는 미래를 받아들여야죠. 올바른 지도자라면 국민에게 이 어려운 말을 해야 해요. 고통을 함께 짊어지자고 설득할 용기와 도덕성을 보여줘야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저는 중학생입니다’로 시작되는 ‘기후위기 관련 정책을 만들어주세요’란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있다. ‘개인은 개인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이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낸 기후위기의 시작을 왜 끝에서는 현재의 학생들이 책임져야 하죠?’라고 했다. 조 전 원장의 말처럼 ‘이 세상에 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응답할 때가 됐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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