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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우울증·조울병 재발, 스마트폰 앱으로 막는다

질병 고치는 디지털 치료제

여성 조울병 환자가 앞으로 다가올 3일의 기분상태 예보를 스마트폰 앱을 통해 확인하고있다. 생활리듬을 감지하는 손목형 스마트밴드와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디지털 치료를 약물 치료와 병행할 경우 우울증과 조울병 재발을 예방해 준다는 사실이 최신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가상·증강현실, 게임까지 활용
기분 악화 예방하고 습관 개선
식약처, 인·허가 지침 월내 발표

35세 여성 B씨는 청소년기부터 우울증과 기분이 상승하는 조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조울병(양극성장애)을 앓아왔다. 오랜 기간 기분 조절제 등 약물을 써 왔지만 잦은 재발로 생활에 불편을 겪었다.

그러다 1년 전 고려대 안암병원이 진행한 이른바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 임상연구에 참여해 뜻밖의 효과를 경험했다. B씨 같은 조울병과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약물 치료를 하면서 손목에 착용하는 스마트밴드(웨어러블 기기)와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생활습관을 관리하는 실험이었다.

B씨는 측정 센서가 장착된 스마트밴드를 통해 매일 자신의 활동량, 수면 습관, 빛 노출, 맥박수 등을 체크하고 낮밤의 변화에 맞춰 생활이 얼마나 규칙적인지 점수화된 그래프를 스마트폰 화면으로 제공받았다. 생체 리듬이 불규칙할 때는 인공지능(AI)이 자동으로 경고 문자를 보내왔다. 또 스마트폰을 통해 다가올 3일의 기분 상태 예보도 제공받았다. 그에 따라 생활습관을 고치고 기분 악화에 미리 대처할 수 있었다. B씨는 “매번 내 기분 상태를 확인하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었고 덕분에 가족들 삶도 평안해졌다”며 만족해 했다.

기분장애 환자 73명을 대상으로 1년간 진행된 이 연구결과는 모바일 헬스 분야 최고학술지(Journal of Medical Internet Research) 최신호에 실렸다. 고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팀은 세종충남대병원, 성신여대와 공동연구를 통해 참가자들에게 약물 치료와 함께 스마트밴드 및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 앱(CRM, Circadian Rhythm for Mood)을 적용해 효과를 확인했다.

연구팀은 약물 치료와 스마트폰 앱을 병용하는 CRM군(14명)과 통상적인 약물치료만 하는 비CRM군(59명)으로 나눠 1년간 재발 양상을 추적·관찰했다. 두 군 모두 매일 스마트밴드와 스마트폰을 이용했으나 CRM군에게만 자신의 생활습관 점수 및 기분변동 예측 피드백과 생활리듬 악화 경고 알람이 제공됐다.

그 결과 CRM군의 연평균 재발 횟수가 0.6회로 비CRM군(2회)의 3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증상 재발기간도 CRM군은 연간 평균 22일로 비CRM군(84일)보다 4분의 1정도로 감소했다.

이 교수는 “우울증과 조울병은 자주 재발하는 병으로 약물 만으로는 치료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치료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면서 “특히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수면 관리가 재발 예방에 매우 중요한데, 디지털 치료가 도움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3세대 치료제로 부상

이처럼 최근 디지털 치료제의 효과를 밝힌 연구들이 국내외에서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흔히 치료제라 하면 먹거나 바르거나 주사하는 형태의 약을 뜻한다. 반면 디지털 치료제는 질병이나 장애를 예방·관리·치료하는 기능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지칭한다. 스마트폰앱이나 가상·증강현실(VR·AR), 게임 등이 포함된다. 의료계와 학계에서 근래 통용되기 시작한 용어다. 일각에선 ‘전자 약’으로 부르기도 한다. 합성 신약, 바이오의약품에 이은 ‘3세대 치료제’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실제로는 치료제가 아닌 의료기기로 허가·관리되는 추세다. 그래서 ‘디지털 치료기기’라는 용어도 함께 쓰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8년 12월 의료기기법을 개정해 질병 치료 목적의 기구·기계·장치·재료 등 기존 의료기기 정의에 소프트웨어와 유사한 제품을 새로 추가했다. 식약처는 24일 “디지털 치료제는 학문적 용어이며 치료제라고 하면 일반인에게 약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측면이 고려됐다”고 밝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의료기기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향후 용어 통일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약처 관계자는 “새로운 분야인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과 인·허가 관련 상담이 많이 늘고 있다”면서 “디지털 치료기기의 정의와 판단 기준, 제품 사례, 합리적인 허가·심사 방안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이달 안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식약처는 2017년 세계 최초로 빅데이터 및 AI기술 적용 의료기기의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후 보다 구체화된 VR·AR 기술 적용 의료기기 허가·심사 기준, 의료용 모바일 앱 안전관리 지침 등도 잇따라 내놨다. 의료용 모바일 앱과 AI 의료기기는 지금껏 각각 42건, 43건이 허가돼 쓰이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개념이 정의된 디지털 치료기기는 의료용 모바일 앱이나 AI 의료기기처럼 단순 진단이나 분석, 예측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특정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게 차이점이다. 따라서 의사 처방이 있어야 사용 가능하다.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디지털 치료기기는 ①소프트웨어 의료기기 ②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할 목적으로 환자에게 적용 ③치료 과정에 대한 과학적(임상적)근거 확보 등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해당된다.

디지털 치료제는 2017년 9월 미국 FDA가 알코올, 코카인 등 약물 중독 치료를 표방한 모바일 앱(reSET)을 승인해 준 것이 세계 첫 사례다. 이후 10여개 제품이 FDA 승인을 받았다.

약물중독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조현병, 치매(알츠하이머병), 뇌졸중, 파킨슨병, 편두통, 수면장애, 우울증, 조울병, 비만, 천식, 당뇨, 고혈압, 암 등 중추신경계와 정신과, 만성질환 영역에서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국내의 경우 대학병원에서 진행된 임상연구 차원의 결과가 조금씩 나오는 초보 단계이다. 앞서 고대 안암병원의 연구 외에 서울의대 최형진 교수팀이 지난 5월 디지털 기술과 인지행동 치료를 접목시켜 비만 치료에 성공한 결과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바 있다.

체질량 지수(BMI,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24 이상의 과체중·비만 성인 70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플랫폼인 ‘눔(Noom)’ 및 체지방측정 앱 ‘인바디’를 활용해 식습관과 활동량 등 행동 교정과 개인 맞춤형 심리 치료를 병행한 결과 8주 만에 평균 3%의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고 최대 18㎏까지 살을 뺀 경우도 있었다.

연구 논문 1저자인 김미림 연구원은 “비만은 심리적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기, 자존감, 우울, 불안 수준이 치료 효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체중 감량 동기가 높고 우울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치료 성공률이 100%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최형진 교수는 “약물이나 주사 치료의 경우 받는 동안에는 살이 빠지지만 중단하면 ‘요요 현상’ 같은 부작용 가능성이 큰데, 디지털 치료를 병행하면 일상생활을 하면서 왜 살이 찌는지 등을 정확히 파악한 뒤 그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기 때문에 거부감이나 요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뇌손상에 따른 시야 장애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된 가상현실(VR)기반의 소프트웨어 ‘뉴냅비전’. 뉴냅스 제공

복잡한 인·허가 절차 등 해결과제

디지털 치료제로 국내 당국의 허가를 받은 사례는 아직 없다. 다만 뇌졸중 환자의 뇌손상에 따른 시야 장애를 치료하는 VR(가상현실) 기반의 소프트웨어(뉴냅비전)의 임상시험 1건이 진행 중이다. 스타트업 뉴냅스가 개발해 지난해 6월 국내 처음 식약처 임상시험 승인을 얻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 등 5개 대학병원에서 8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효능과 안전성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이밖에 웰트(근감소증), 라이프시맨틱스(암 및 뇌졸중 예방) 등 몇몇 업체가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착수한 상황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이승민 연구원은 “디지털 치료제는 치료제 개발이 어렵거나 기존 치료제로 해결이 어려운 미충족 질병 분야에 시장 형성과 함께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디지털 치료제 세계 시장 규모는 2022년 약 96억4000만달러(11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해결 과제도 적지 않다. 인·허가를 위한 복잡한 규제 절차와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신의료기술 평가 방식 개선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전문가는 “소프트웨어가 질병 치료로 영역을 확장하는 디지털 치료제의 전망이 장기적으로 밝지만 의학적, 산업적으로 증명된 바가 그리 많지 않다. 또 디지털 치료제가 보편화되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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