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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K경항모와 해양 DNA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지난 3월 말 남중국해상에서 작전 중이던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루스벨트호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산 우려로 급히 피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승조원만 4800명에 달하는 거대 항모도 맨눈으로 볼 수 없는 미생물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사건의 본질은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격화되는 미·중 간 해양패권 경쟁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는 데 있다. 중국은 잠시 생긴 힘의 공백을 놓치지 않고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고, 당황한 미국은 중국의 해양패권을 저지하기 위해 더 많은 해군력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생명선인 주요 해상교통로임에도 그간 남중국해 문제는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이었다. 하지만 미·중 간 경쟁에 러시아 일본 인도 호주까지 가세하면서 더는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게 됐다. 지금까지 북한의 안보 위협 억제가 우리의 최우선 과제였다면 이제 해양을 중심으로 요동치는 역내 안보 지형의 불확실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반도 주변 해역뿐만 아니라 원해에서도 작전 수행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국방부가 발표한 경항모 건조 계획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개별 사안에 대한 찬반을 떠나 역내 지정학 문제만 놓고 보면 경항모 도입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이후 또 하나의 신의 한 수가 될 것이다. 환경보호 등의 이유로 10년이 넘는 진통 끝에 완성된 제주 해군기지는 이제 주변국들이 부러워하는 동북아 해상교통로 보호를 위한 요충지가 됐다. ‘움직이는 다목적 군사기지’인 항공모함도 대한민국이 동아시아 해역에서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가 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때와 마찬가지로 경항모 도입 결정을 두고 주변국, 특히 중국을 자극해 역내 안보 불안을 조성한다는 우려가 있으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병자호란 때 패한 인조가 청나라에 굴복해 체결한 1637년 정축약조(丁丑約條)를 예로 들어보자. 이 협정으로 청은 조선왕조의 명맥은 유지해 주었지만 안보 불안을 명분으로 신구(新舊) 성의 축성을 불허함으로써 공성전을 주로 하던 시대에 조선의 국방을 무력화시켰다. 조선은 숙종 때인 1711년 북한산성 축성을 개시할 때까지 70년 넘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성을 짓지 못했다. 아직 주변국들이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는데, 이는 각자 항모전단 건설에 열을 올리는 마당에 해양 강국 위상에 걸맞은 우리의 경항모 도입 결정을 공개적으로 반대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그런 처지를 우리가 알아서 살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종종 단기적 비용과 장기적 이익 사이에서 결정장애에 빠진다. 이때 중요한 판단 기준이 긍정적 외부 효과의 존재 여부다. 중국이, 일본이, 러시아가, 미국이 가졌으니 우리도 항모가 필요하다는 것은 소극적 논리다. 항모는 장식용이 아니다. 경항모 도입으로 우리가 안고 있는 안보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의 평화를 스스로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부일 뿐이다. 그럼에도 경항모 도입은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잠수함이나 구축함의 단독작전이 갖는 한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해에서도 우리의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항모전단 구성이 필수적이다. 항모전단은 대한민국 전체의 전략 자산이며 ‘해양영역 인식(maritime domain awareness)’을 확장하는 데도 이바지할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K항모는 몽상이었지만 이제는 실현 가능한 꿈이 됐다. 우리가 세계 1위 조선 대국인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항공모함은 15세기 이후 명나라의 영향으로 조선왕조가 고집한 해금(海禁) 정책 때문에 억눌렸던 우리의 ‘해양 DNA’를 복원하는 상징이자 메타포다. 역설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가 그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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