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시대다] 청춘에 대한 회상록… 어른들에 보내는 위로·격려의 연서

<3>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를 넘다 ‘응답하라 1988’

tvN ‘응답하라 1988’은 1971년생 덕선과 친구들의 이야기다. (왼쪽부터) 공부보다는 외모에 관심이 많았던 쌍문여고 2학년 덕선(혜리), 공부보다는 춤에 빠진 동룡(이동휘), 어리지만 든든한 선우(고경표), 천재 바둑기사 택(박보검), 까칠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정환(류준열)의 모습. tvN 제공

골목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세대들에게 덕선이와 친구들이 살던 쌍문동 봉황당 골목은 그리움 그 자체였다. 그곳에는 하얗게 타버린 연탄재가 시멘트 쓰레기통 옆에 쌓여있었고, 음식 담은 쟁반을 들고 이웃집 대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골목 어귀의 평상은 엄마들의 고민상담소이자 휴식처였고, 가로등은 첫사랑의 설렘이 묻어있는 이정표였다. 시간이 지나 개발 바람이 골목 풍경들을 빠르게 지워갔지만 세상 풍파에 시달릴 때마다 생각나는 곳이었다. 그 사라진 골목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2015년 tvN ‘응답하라 1988’은 청춘의 한때에 대한 회상록이었고, 묵묵히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의 연서(戀書)였다.

‘함께’의 가치가 살아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응답하라 1988’은 빈곤과 풍요의 경계에 있던 1971년생 덕선과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공부보다는 외모와 재미있는 일들에 관심이 많았던 쌍문여고 2학년 덕선(혜리), 아버지가 안 계셔서인지 어리지만 든든한 가장의 몫을 잘했던 선우(고경표), 까칠하고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전형적인 츤데레 정환(류준열), 공부보다는 춤에 빠진 춤신춤왕 동룡(이동휘), 그리고 천재 바둑기사 택(박보검). 한 골목에서 대문을 마주하고 사는 동네 친구들이다. 이들의 아지트는 택이의 방. 방주인이 있거나 없거나 수시로 드나들었다. 모여서 공부하기보다는 영웅본색 비디오를 보며 주윤발의 액션에 환호했다. 만화책 보며 낄낄거리고, 박남정과 소방차의 춤을 따라 했다. 아이들이 몰려다닌다고 야단치는 부모님은 안 계셨다. 그저 저녁때가 되면 밥 먹으라고 대문 앞에서 소리칠 뿐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저희끼리 커 나갔다.

함께 나이 먹어가긴 부모 세대도 마찬가지였다.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했지만 복권 당첨으로 인생역전을 이룬 정환이네는 전자대리점 운영으로 여유로웠다. 넉넉하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환이 엄마, 아빠는 부족한 사람들을 그냥 넘기지 못했다. 덕선이의 수학여행 비용이 모자랄 때는 슬쩍 돈을 보태주었고, 갑자기 찾아오는 친정엄마에게 궁색한 살림 보이기 싫어하는 선우 엄마를 위해 미제 식료품과 연탄, 옷 등을 빌려주기도 했다. 부부는 닮는다고 했던가. 정환이 아빠도 가짜인 줄 뻔히 알면서 고향 친구가 내민 점퍼를 비싼 가격에 사 들고 들어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은행원이지만 빚보증 때문에 마흔이 넘어서도 반지하에 사는 덕선이 아빠는 박봉에도 책 사달라고 온 후배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못했다.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모으려고 밤마다 공중목욕탕 청소 일을 했던 선우엄마를 위해 동네 사람들은 어린 진주를 돌아가며 챙겨주기도 했다.

tvN ‘응답하라 1988’ 포스터. tvN 제공

아무리 사이좋은 이웃이라도 살다 보면 서로 마음 상하는 일도 있고 싸울 일도 있겠지만 이 골목 사람들은 아이나 어른이나 남의 마음에 못 박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가끔 투덕거리긴 해도 천성이 순했다. 보기는 좋지만 이런 설정은 당연히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보다 좋지 않겠는가. 그런 바람 속 사람들을 봉황당 골목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자유롭게 넘나든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

‘응답하라 1988’은 한국 드라마 역사에 예능 프로그램 PD와 작가들이 만든 첫 번째 드라마로 기록된 ‘응답하라 1997’(2012)로부터 시작됐다. 아이돌에 빠진 고등학생들 이야기를 그린 ‘응답하라 1997’은 복고라는 소재가 경험자의 몫이 아니라 즐기는 자의 몫임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다. 속편은 전편만 못하다는 속설을 깬 ‘응답하라 1994’(2013)는 전편 시청률 5.1%(닐슨코리아)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비지상파 드라마 최초의 두 자리 시청률 10.4%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세 번째 이야기 ‘응답하라 1988’은 시청률 18.8%를 기록하며 당시 비지상파 역대 시청률 1위 자리에 올랐고, 지상파와의 드라마 경쟁에서 역전의 승기를 잡는 변곡점이 됐다.

무엇이 이 열풍을 가능하게 했을까. 그건 경계를 허물며 나간 결과였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보통의 드라마 제작과 달랐다. 신원호 PD는 KBS 예능국에서 ‘남자의 자격’ 등으로 두각을 나타낸 예능PD였고, 이우정 작가는 ‘1박 2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독보적인 예능 작가였다. 이들이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성공한 자들의 외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영역의 확장이었다. 예능의 문법으로 만들어낸 드라마는 새로웠다.

이우정 작가팀의 공동 집필은 밀착적이고, 집단적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등장인물들은 자기 색을 명료히 갖고 자기만의 서사를 풀어갔다. 다른 드라마보다 등장인물이 많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각각의 인물들에게 부여된 세밀한 설정은 이야기를 풍성하게 했고, 부모 세대들을 통해 가족 사랑을 살려내면서 감동을 극대화했다. ‘지금의 재미’가 중요했던 예능적 시선은 과거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온고지신의 역사적 의미를 묵직하게 부여하지도 않았고, 근사한 설정으로 애써 시간을 포장하지도 않았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들을 기반으로 ‘함께 산다는 것’과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줬다.

정환의 집에 모여 있는 쌍문동 식구들. tvN 제공

연출 또한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를 무색하게 했다. 신원호 PD는 쉴 틈 없이 재미를 주어야 하는 예능의 속성을 드라마의 디테일로 살려냈다. 당시 사회문화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소품들은 당연했고, 신경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에도 고증을 거친 장치들을 배치했다. 그중 백미는 택이가 중국에서 열린 국가대항전에 참가했을 때이다. 이창호 바둑기사의 실화를 모델로 했기에 택이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를 연상시키긴 했지만 게임 결과를 보여주는 바둑판의 바둑알까지 완벽하게 만들어냈을 때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비슷하게 재연해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을 터인데 제작진은 바둑알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물론 고증은 상황에 따라 시간의 순서를 다르게 배치하기도 했고 유사한 형태로 변형시키기도 했는데 이 또한 ‘고증 오류 찾기’라는 신기한 바람을 불러왔다. 시청자들은 마치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오류들을 찾아내 공유하며 드라마에 몰입해갔다. 소품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뿐 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부족함마저도 재미로 승화시킨 예능 문법이 드라마에선 새로움이 됐다.

예능적 속성이 주는 재미를 극대화하는데 ‘덕선이 남편 찾기’는 최적이었다. 마치 게임 예능을 보고 있는 듯 매회 마다 등장하는 실마리들은 추리의 폭을 좁혀가기보다 혼선을 빚기 일쑤였고, 그래서 시청자들과의 밀고 당기기는 흥미를 더해갔다. 누가 덕선의 남편이 되어도 친구 중 하나일 것은 뻔했지만 그런데도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정환)’와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으로 나뉜 시청자들은 정환과 택의 방송분량을 분석하고 치밀하게 배치된 복선들을 찾아내며 제작진과의 게임을 즐겼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설정인가. 장르물에서 볼 수 있는 추리의 묘미를 게임의 재미로 살려내는 제작진의 계산법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드라마에 사용된 음악 또한 새로운 접근이었다. 대중문화의 르네상스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1988년 전후의 노래들은 배경음악뿐 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즐기는 라디오나 TV 프로그램, 영화의 장면 등을 통해서 등장했다. 신해철의 ‘그대에게’를 시작으로 변진섭의 ‘새들처럼’, 송골매의 ‘세상만사’등 웬만한 가요와 귀에 익숙한 외국 음악들은 쉴 새 없이 당시를 소환해냈다. 여기에 산울림의 ‘청춘’, 이문세의 ‘소녀’,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 등은 원곡이 아니라 다른 가수들에 의해 재해석된 곡들로 등장시켜 시대를 넘나드는 감동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뉴트로 열풍에도 불을 붙였다.

‘응답하라 1988’은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고집하기보다 그 너머에 있는 것들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디지털 시대의 속성을 겁 없이 수용했다.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이 만들어낸 드라마는 그렇게 따뜻한 기억이 되었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