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 마니아 돈선필, 피규어 두상을 빚다

개인전 ‘포트레이트 피스트’ 가져… 작가 “피규어야말로 시대의 화석”


전시장에 두상 조각들이 늘어서 있다. 흔히 봐왔던 석고 두상과 비슷해 보이지만 왠지 피규어 냄새가 난다. 무엇보다 미색, 멀건 분홍색 등 본디 색에서 한 겹 탈색시킨 듯한 색상에서 푸르죽죽한 플라스틱 피규어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피규어 작가’로 통하는 돈선필(36) 작가가 다시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신작을 내놓은 개인전 ‘포트레이트 피스트(초상권: ‘권’은 원래 권리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주먹이라는 뜻을 써서 장난스럽게 표현·사진)’를 통해서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20년 가까이 피규어를 모아온 피규어 마니아다. 취미였던 피규어 수집은 미대를 졸업한 이후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조각은 작가 혼자서 작업실에 갇혀 생산하는 거지만, 피규어는 이미지를 기획하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여러 층위의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서 탄생한다. 피규어야말로 시대의 화석이자 현대의 조각”이라고 생각한 그는 전시장에 공산품 피규어 자체를 늘어놓기도 했다. 공산품과 미술품에 위계를 두는 구분에 대한 반기였다.

이번 전시에는 피규어처럼 보이는 두상을 직접 레진으로 제작해 내놓았다. 두상 뒷면엔 영문자로 ‘FRAGILE’(부서지기 쉬운)’을 새김으로써 공산품 냄새를 강화했다. 앞의 얼굴 부분은 일부러 평면으로 깎아내렸기에 두상에는 눈도, 코도, 입도 없다. 사물처럼 무표정하다. 그런 얼굴에 만화 여주인공 모형, 칼을 든 전사 모형 등을 얼굴에 부착했다. 애니메이션에서 자신이 정체성을 확인받는 요즘 세대들의 초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전시는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아트선재센터에서 9월 13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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