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최현주의 밥상+머리

[최현주의 알뜻 말뜻] 몸과 맘은 왜 비슷하게 생겼을까


사람들이 ‘몸’이라고 말할 때는 어쩐지 슬픈 느낌이 든다. 일전에 한 책에서 그렇게 썼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똥이나 별이라는 말들과는 또 다르다고. 어쩐지 슬픈 느낌이 들어서 누군가 ‘몸’이라고 말할 때마다 가만히 지켜보곤 한다. 오 발음 덕분에 입 안에는 작고 둥근 동굴이 생겼을테지만, 양 입술은 달라붙고 입은 꾹 닫힌다. 영어의 body나 중국어의 体, 프랑스어의 corps보다 나는 우리말 ‘몸’이 진짜 몸 같다. 가끔은 우리말이 상징적으로 깎고 다듬어 만들어진 세공품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국어학자들이 들으면 아주 황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몸을 몸이라고 말하게 된 것은 신성에 대한 일종의 경외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해와 달과 별을 만든 창세신이 정말 존재한다고 믿었던 순박한 사람들이 신과 신 이외의 목숨을 구분하기 위해 몸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을 것만 같다. 신이 몸을 가진 것들을 만들 때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몸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다시 말해 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사방을 창 없는 방처럼 닫아둔 것이라 여겨 ‘몸’이라고 말하고 또 쓰게 된 건 아닐까?

세상에 아무리 눈이 밝은 자라도 혼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이 자신의 몸속이다. 화성을 탐사하고 멀리 태양계 밖을 내다보는 뛰어난 과학자라고 해도 자신의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보지 못한다. 안에서 일어난 일이 밖으로 드러나야만 겨우 눈치를 챌 뿐이다. 오만가지 것에 정신을 파는 대신 자신에게 집중하는 동물들은 인간보다 조금 나을 성 싶지만, 인간이나 짐승이나 생명을 가진 것 모두 제 눈으로 볼 수 없는 유일한 것이 자신의 안쪽이라니!

어린 시절엔 몸 안 어딘가에 마음이 있다고 믿었다. 조금 커서는 마음이 몸과 분리된 그 어디쯤에 있을까 궁금했다. 지금은 굳이 마음을 찾아 헤매지 않게 됐다. 마음을 흔히 ‘맘’이라고 줄여 말하는 것은 마음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긴 단어여서가 아니다. 고작 두 음절인 마음을 한 번 더 줄여 ‘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마음이라는 것이 워낙 넓고 방대해서 가끔은 줄여서 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말꼴인 걸 보면, 맘이 압축된 형상이 몸일 수도 있겠다.

올여름, 세상의 많은 몸들이 아프다. 50일 넘게 이어진 유례없는 장마에 둥둥 떠내려가던 가축들을 보며 저들도 나도 똑같은 한 목숨. 몸을 가진 것들이 애처로웠다. 긴 장마 끝에 비로소 깨어나 악을 쓰고 울어대는 매미도 일개 미물일 리 없다. 혹여 내 몸속에 침투해 나는 물론이요, 내 가족과 이웃을 감염시킬 수도 있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와 8개월째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몸은 그 얼마나 애처로운가? 서로가 서로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그 맘들은 또 얼마나 눈물겨운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그 맘과 무관하게 백주대낮 광장에 모여 설쳐댄 자들이여. 그 무지막지한 맘은 도통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이라고 해서 그 몸들이 안녕할 리 있겠는가.

카피라이터·사진작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