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우편투표, ‘화약고’… 트럼프, 패배 때 불복 가능성 시사

사진=AP연합뉴스·게티이미지

우편투표가 올해 11월 3일 실시될 미국 대선의 화약고로 부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편투표에 대해 ‘부정 선거’ ‘투표 사기’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우편투표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선거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을 시사해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강타하면서 올해 미국 대선에선 우편투표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전체 50개 주 가운데 43개 주에서 코로나19를 사유로 우편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우편투표=부정선거’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투표 확대에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투표율이 높아질 경우 대선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투표용지가 개표 시한을 넘겨 도착하는 경우, 우체국 등의 실수로 투표용지가 배송되지 않는 경우 등 우편투표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지 않다.

대선 이후 우편투표를 놓고 미국이 난장판이 될 수 있다는 불길한 전망도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지지 세력과 반(反) 트럼프 세력이 물리적으로 충돌할 위험도 있다. 대선이 초박빙 접전으로 끝날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 우편투표 논란이 긴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억6200만명 우편투표 권리 확보

미국에선 선거일에 투표장에 나오기 힘든 유권자를 위해 ‘부재자 우편투표’(mail-in absentee voting)와 ‘사전 투표(Early Voting)’를 시행하고 있다. 올해엔 ‘코로나19로 인한 우편투표’가 추가됐다.

올해 미국 대선의 전체 유권자는 2억1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78%에 해당하는 1억6200만명이 우편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의 우편투표 방식은 각 주(州)에 따라 다르다. 캘리포니아주 등 9개 주와 워싱턴DC는 모든 유권자들에게 자동적으로 우편투표할 권리를 부여한다.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우편투표 용지가 모든 유권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전체 유권자의 21%인 4400만명이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미시간주·오하이오주·플로리다주 등 34개 주는 우편투표를 신청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우편투표를 신청한 모든 유권자들에게 특별한 사유를 묻지 않고, 우편투표 권리를 부여한다. 신청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전체 유권자의 57%인 1억 1800만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뉴욕주·텍사스주 등 7개 주는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만으로 우편투표를 할 수 없다. 우편투표를 하기 위해선 투표소 투표가 불가능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전체 유권자의 22%, 4600만명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 7개 주는 현장 투표를 권장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선 불복에 재선거도 시사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우편투표가 선거를 조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선 승복 여부를 묻는 질문에 “나는 그저 ‘예’나 ‘아니오’로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을 흐렸다. 대선 불복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거를 입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우편투표는 조작된 선거로 귀결되거나 결과가 공표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선거를 다시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주소지인 플로리다에서 공화당 의회선거 출마자를 뽑는 예비선거(경선)에 우편투표로 한 표를 행사하는 모순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편투표 논란에 기름을 부은 사람은 루이 드조이 연방우체국장이다. 물류기업 경영자 출신인 그는 공화당 고액 기부자로 알려졌다. 드조이 연방우체국장은 지난 6월 취임 이후 비용 절감을 이유로 고속 우편물 자동분류기를 일부 없앴고, 우편물 정시 배송을 위한 초과근무도 폐지했다. 이런 조치는 대선 우편투표를 방해하려는 의도적인 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원 청문회에 불려나온 드조이 국장은 우편물 자동분류기 일부를 없앤 것을 복원시키지 않겠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대선 투표용지를 안전하게 정시에 배송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정선거 근거 없지만 사고 우려 있어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미국의 많은 주들은 올해 2월부터 8월 초·중순까지 치러졌던 대선 후보 경선에 우편투표를 실시했다. 그랬더니 31개 주에서 투표율이 올랐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사진=게티이미지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투표를 반대하는 속내도 투표율 상승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강력한 지지집단을 갖고 있다. 이들은 투표 참가에 열성적이다. 반면 ‘반(反) 트럼프’ 정서는 느슨하지만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우편투표가 이들의 투표를 촉진할 거라는 게 트럼프 진영의 걱정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인 백인 노인들도 우편투표를 통해 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있어 트럼프 입장에서 우편투표가 반드시 손해만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선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선거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우편투표에 사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자체 집계 결과, 23개 주 예비선거에서 기각된 우편투표가 53만4000여표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2016년 대선에서 무효 처리된 우편·부재자투표 수인 31만9000표를 훨씬 넘는 수치다. 11월 대선에서도 우편투표 무효표가 쏟아질 수 있다. 게다가 투표용지 배송 지연이나 투표 결과 지각 도착 등의 사고가 빚어질 경우 대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

미국은 우편투표가 아무 문제없이 실시되기만을 비는 상황이다. 특히 투표용지의 정시 배달과 시한 내 개표소 도착 등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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