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조용신의 스테이지 도어] 외로워진 관극, 그 마저 볼 수 없다면…

지난 7월 객석 거리두기를 적용해 공연을 재개했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런던 팔라디움 극장의 모습. 런던 팔라디움 홈페이지 캡처

결국 올 것이 왔다. 극장들이 다시 문을 닫았다. 국공립 극장이 조심스레 문을 다시 열었다고 소심하게 기뻐하던 게 한 달도 못 갔다. 국공립 문화예술시설들이 모두 다시 문을 걸어 잠그면서 공연계 역시 다시 위축됐다. 특히 오픈을 감행했던 공연들의 앞날은 오리무중이다. 수익을 낼 수가 없는 좌석 간 거리두기와 저조한 티켓판매율을 이겨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독일 라이프치히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의미 있는 실험이 진행됐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선 말 그대로 바이러스가 얼마나 전파될 것인지를 알아보는 과학 실험이었다. 이를 위해 할레 대학 연구원들이 여러 가지 다른 상황을 만들어 세 차례의 공연을 올렸다. 독일 유명 싱어송라이터인 팀 벤츠코가 무대에 오른 이 공연엔 4000명의 관객이 참가했다.

관객들은 젊고 건강한 자원자로만 이루어졌으며 전원 체온 검사, 고품질 마스크 착용, 공연장 내 움직임을 추적하는 전자기기를 착용했다. 형광 소독제를 이용해 관객이 공연장 안에서 만지는 물건들의 빈도는 물론 숨 쉴 때 내뱉는 입김의 입자까지 추적했다. 가을에 발표될 이 결과에 따라 향후 대규모 콘서트의 개최 여부는 물론 공연장 방역지침의 한계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무작정 공연예술을 규제하는 게 아니라 공연 가능한 방역 상태를 찾겠다는 의지다.

한편 웨스트엔드에서는 작곡가이자 공연 제작자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카메론 맥킨토시가 팔라디움 극장에서 한국 방역시스템을 본보기 삼아 객석을 방역하고 띄어 앉기를 적용해 공연을 올리는 실험을 진행했다. 다만 영국은 한국의 지그재그 좌석제보다 더 엄격한 거리두기를 시행해 좌석 간 1m를 띄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 파일럿 공연을 앞두고 런던 공연계에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폐막을 번복하는 등 핑크빛 앞날을 상상했다. 하지만 실험은 참담한 분위기로 막을 내렸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력감이다. 배우들은 당장 X자 표시된 빈 좌석들이 주는 무게감에 답답해했으며, 마스크 낀 관객들이 마네킹처럼 어떤 리액션도 하지 않는 것에 얼어붙었다.

관객들은 관객들대로 감정을 절제하며 공연을 봐야 한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1m 거리규정을 둔 극장에서 객석 앞뒤 양옆으로 모두 빈 상태에서 무대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혼자만 극장에 앉은 듯한 엄숙함이 엄습한다. 다른 관객들과 한 무더기가 되어 즐거워하고 함께 감동하는 순간을 나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군중 속에 묻혀 스스럼없이 기뻐하고 감동하는 익명성이 사라지고 한 명 한 명이 객석 전체를 책임지는 듯한 무게감을 느끼게 된다. 휴식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샴페인을 마시며 타인과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 사교를 즐기던 사람들에게는 나무토막처럼 침묵해야 하는 상황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한국 관객들은 ‘조용한 관극’에 이미 익숙해진 면이 있다 보니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영국과 차이가 있다. 우선 한국에서는 극장에서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공연장에서 일행이 아닌 타인과 수다를 나누는 상황은 거의 상상하기 어렵다. 서울 샤롯데극장에서는 영국 극장을 본받아 휴식시간에 아이스크림을 팔았지만 이도 코로나19 이후 멈췄다.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 대학로 소극장이나 중극장 공연일수록 공연에 집중하기 위해 뮤지컬을 볼 때도 노래가 끝났다고 해서 박수를 치지 않고 조용히 다음 장면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멋모르고 감동에 겨워 손뼉을 쳤다가는 눈총을 받는다.

그동안 ‘시체관극’이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돌 정도로 지나치다 싶었던 공연 마니아들의 관극태도가 역설적이게도 전염병의 시대를 사는 관객의 올바른 자세가 되었다. 휑하니 빈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일은 한없이 외롭지만, 절망스러워하는 런던 공연계와 비교하면 한국 관객들은 이런 상황에 연습이 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이런 조용하고 외로운 관극마저 불가능할 정도로 코로나19가 창궐한다면 그때는 객석으로 다시 돌아가기 어려워질까 봐 두렵다.

이수진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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