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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대통령의 인사권, 감사원의 독립성

라동철 논설위원


대통령과 감사원장 이견으로 감사위원 5개월째 공백 사태
여권 편향 논란 인물 선임 밀어붙이는 청와대 책임 커
새 인물 물색해 감사원의 독립성·중립성에 힘 실어줘야

감사원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감사위원회 구성원인 감사위원 일곱 자리 가운데 한 자리가 5개월째 공석이다. 이준호 전 감사위원이 지난 4월 3일 퇴임했는데 아직도 후임이 임명되지 않고 있다. 감사위원은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제청권자인 감사원장이 협의해 선임해 온 게 관례다. 그런데 최재형 감사원장이 추천한 인물이 청와대 인사검증 과정에서 탈락하고 청와대가 낙점한 인물은 최 원장이 제청을 거부해 장기 공백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감사원은 행정부 소속으로 대통령 직속 기구이며 감사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감사원장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제청 요청을 거부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감사위원회는 재적 감사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안건을 의결한다. 결원이 있으면 정상적인 운영에 차질이 있기 마련이다. 빠른 시일 내에 후임자가 임명돼야 할 것이다. 헌법 제98조와 감사원법 제5조에는 ‘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명시돼 있다. 감사원장이 제청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감사위원을 임명할 수 없게 돼 있다. 최 원장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제동을 걸고 있는 모양새다.

여권은 최 원장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24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청와대의 인사권을 존중해 빠른 시일 안에 제청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최 원장을 압박했다. 그러자 최 원장은 작심한 듯 “임명권자와 협의하면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에 적합한 분을 제청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대꾸했다. 청와대가 요청한 인물을 제청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청와대가 임명하려는 인물은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차관은 박상기 조국 추미애 등 3명의 법무부 장관에 걸쳐 차관을 지냈고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대검찰청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지휘 라인에서 배제하는 특별수사팀 구성을 제안했던 인물이다.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도덕성을 강조해 온 최 원장으로서는 수용하기 부담스러운 인물일 수 있다. 최 원장은 2017년 12월 인사청문회에서 “청와대에서 특정 인물의 제청을 요구받더라도 그 인물이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의지가 있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권 일각에서 항명이라며 최 원장 사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얼토당토않다.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고 있는 감사원의 독립성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이지만 직무에 관해서는 독립된 지위를 갖는다. 감사원법에는 감사원 소속 공무원의 임면, 조직 및 예산 편성에 있어서는 감사원의 독립성이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청와대는 최 원장을 감사원장에 지명하며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할 적임자”라고 소개했었다. 그 취지에 충실하겠다는 최 원장을 비난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태 해결의 물꼬를 터줘야 한다. 최 원장의 의견을 존중해 김 전 차관 카드를 접고 제3의 인물을 물색해야 한다.

2018년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타당성 여부에 대한 감사와 관련해 여권이 최 원장을 흔드는 것도 부적절하다. 최 원장이 ‘조기 폐쇄가 부당했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감사를 진행한다고 비판하지만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해당 감사는 지난해 9월 국회의 요청으로 시작됐고 정부의 탈원전 정책 전반이 아니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적절성 여부를 가리는 게 핵심이다. 최 원장이 설령 선입견을 갖고 있더라도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 감사위원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다른 위원 3명 이상이 동의하지 않으면 입장을 관철시킬 수 없다. 최 원장을 포함해 6명의 감사위원들은 모두 문 대통령이 임명했다. 감사위원회 발언 내용은 회의록으로 남겨진다. 이런 상황에서 편파적이고 부당한 결론이 나올 수 있겠나.

감사원은 행정부에 속해 있지만 본질적으로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구다.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기능을 제대로 살릴 수 있고, 그럴 때 정부가 더 건강해지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감사원장과 감사위원들을 믿고 감사원의 독립성 강화에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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