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에 들어온 ‘파도 전광판’ 예술인가 장삿속인가

국제갤러리 전시에 의견 분분
“현대미술의 대중화에 큰 역할” “예술적인 개념과 비전이 없어”

‘미디어 아티스트 유닛’을 표방한 ‘에이스트릭트’ 첫 개인전에 전시된 파도는 시각을 압도하는 장대함이 느껴진다. 이를 두고 “현대미술이 대중 곁으로 다가가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예술로서는 부적절하다”는 입장도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입방체 형태의 갤러리 안에 들어서니 쏴∼하는 소리와 함께 파도가 벽을 타고 솟구쳤다 아래로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바닥으론 쉼 없이 밀물이 밀려오며 사라진다. 중력을 거스르는 파도의 힘, 이쪽 끝과 저쪽 끝으로 공간의 제약을 넘어 가없이 바다가 이어지는 데서 오는 무한한 느낌…. 시각을 압도하는 장대함이 늦여름 더위와 ‘코로나 우울증’도 단번에 날려버릴 기세다.

그런데 이것은 예술인가, 장삿속인가. 미술과 상업의 경계가 갈수록 허물어지는 가운데 다시금 그 끝은 어디인지 묻는 문제적 작품이 상업화랑에 들어왔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의 미디어 설치 작업 ‘별이 빛나는 해변(Starry Beach)’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유닛’을 표방한 ‘에이스트릭트(a’strict)’의 첫 개인전이라지만 작가의 정체성이 모호한 이 작품에 예술의 꼬리표를 붙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작가가 누구라는 거지?

무엇보다 작가가 유동적이다. 이 작품은 지난 5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의 SM타운에 선보였던 ‘웨이브(파도) 전광판’ 제작회사 디스트릭트가 맡았다. 당시 CNN에 소개될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국제갤러리도 이후 이 회사와 접촉했다.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는 이번 작품 제작을 위해 작가 브랜드 ‘에이스트릭트(art+strictly)’를 꾸렸다. 멤버는 기획, 영상, 공간, 시스템 등 분야가 다른 4명으로 구성됐다.

이 대표는 최근 갤러리에서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때 그때 팀이 새로 꾸려져 이 브랜드로 작업한다. 코엑스 파도와 이번 파도는 제작 구성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누가 참여할지는 이 대표가 결정한다. 그는 그러면서도 “제가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방향만 제시할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작가는 누구인가. 이상진 부사장은 일종의 ‘아트테크팩토리’라며 현대미술에서 선보였던 집단 생산 체제의 팩토리(공장) 개념을 썼다. 미술기획자 P씨는 “팝 아티스트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등이 ‘아트팩토리’를 운영했지만 모두 작가가 개념을 제시하고 조력자들이 협업하는 형태였다”고 말했다. 그러니 에이스트릭트는 실체가 모호하다. 미술관 관장인 K씨는 “예술집단을 구성하는 방식을 열어둔 오픈 유닛(단위)이다. 현대미술에서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업과 예술의 모호한 경계

디스트릭트는 지금까지 상업, 기술,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활약해왔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의 4D체험장 ‘라이브파크’, KT 및 YG엔터테인먼트와 협력한 홀로그램 가상 공연 등을 선보였다. 후자는 박근혜 정부에서 창조경제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파도 전광판’은 처음으로 선보인 공익 작업이었다.

이 대표는 “광고 공해에 시달리는 시민에게 공공재로서의 마술을 보여주고 싶었다. 도심의 대척점에 있는 자연에서 소재를 가져왔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게 작가 브랜드를 출범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기술이 동시대 미술에서 충분히 작품으로 될 수 있다고 갤러리에서 격려해 준 것도 힘이 됐다”고 강조했다. 어제까지의 엔터테인먼트가 어느 날 순수예술의 옷을 입게 된 것이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디스트릭트의 미디어 기술은 현대미술이 대중 곁으로 다가가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술평론가 Y씨는 “대중이 갤러리에서 즐길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에이전트가 만든 일종의 ‘기획물’”이라고 잘라 말했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예술적 개념과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예술로서는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데도 갤러리의 아우라를 입힘으로써 서로 윈윈이 되면 관련 시장이 형성되며 비슷한 사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미술관장 K씨는 “미술 작가들이 보여준 미디어 파사드 작품보다 제공하는 경험적인 쾌감이 크다. 전혀 다른 공간에 와 있다는 몰입형 경험을 준다는 점에서 예술적 성격이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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