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 데뷔 20주년… 열의로 쌓아 올린 견고한 위상

[한동윤의 뮤직플레이]

2000년 8월 ‘아이디 : 피스 비’를 발표한 보아가 지난 25일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열다섯 살에 데뷔한 보아는 재능과 열정을 바탕으로 그간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다. 사진은 2015년 8월 세종문화회관에서의 데뷔 1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시스

영상 속 앳된 소녀는 확실히 남달랐다. 처음에는 춤 실력이 서툴렀지만 빠르게 일취월장했다. 얼마 뒤에는 힘과 탄력의 조화가 중요한 동작을 너끈히 소화할 만큼 재주가 부쩍 늘었다. 가창력 또한 금세 성장했다. 단 몇 개월 만에 호흡이 자연스러워졌고, 성량도 한결 커졌다. 초등학교 6학년 보아의 연습생 시절을 기록한 영상을 접한 이들은 열정 어린 모습과 발전에 감탄했다. 그 될성부른 나무가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보아는 2000년 8월 첫 앨범 ‘아이디: 피스 비’를 발표하며 연습생 생활을 마치고 프로의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당시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 때문에 보아를 가소롭게 보는 시선도 여럿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또래 가수들의 음악적 역량이 턱없이 모자랐던 탓이다. 댄스음악이 대세였던 이때는 춤을 잘 춰서 가수로 데뷔하는 중학생, 고등학생이 많았다. 반면 보아는 소속사의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을 거쳐 춤과 노래에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추고 등장했다. 방송과 음반을 통해 특출함을 확인한 이들은 부정적인 눈빛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보아는 2001년부터 일본 대중음악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이듬해 일본에서 낸 1집 ‘리슨 투 마이 하트’는 한국 가수 최초로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 이를 비롯해 총 일곱 장의 음반이 오리콘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이 대단한 업적은 바탕이 튼튼했기에 이룰 수 있었다.

보아는 애초에 세계 진출을 목적으로 길러졌으며, 이를 위해 일본어와 영어를 배웠다. 현지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은 외국 시장 진출을 수월하게 해 준다. 하지만 커다란 성과를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재능에서 나온다. 보아는 너른 음역과 깔끔한 기교, 전문 댄서에 버금가는 춤 실력,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로 타국 음악 팬들을 매료시켰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사랑을 받은 보아는 ‘아시아의 별’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획득했다. 그야말로 스타가 됐지만 음악성 배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보아는 2002년 앨범 ‘넘버 원’ 중 ‘디어 마이 러브’ 등을 쓰며 작사, 작곡으로도 영역을 확장했다. 이후 자작곡 수를 점차 늘려 간 그녀는 2015년에 낸 8집 ‘키스 마이 립스’의 모든 노래를 작사·작곡했으며, 프로듀싱까지 맡았다. 스스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드는 아티스트이자 감독으로 완연히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그간의 궤적은 호화로움도 동반한다. 댄스음악과 컨템퍼러리 R&B를 주된 메뉴로 하는 보아의 음악은 늘 그때의 대중음악 동향을 포착함으로써 새로움과 말쑥함을 내보였다. 이와 함께 이미지의 성숙도 점진적으로 표했다. 보아의 디스코그래피에는 허름하거나 아쉬운 구석이 없다.

보아 이후로 수많은 아이돌 가수가 나타났다. 그중 얼마 안 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이가 부지기수다. 그런 이들과 달리 보아와 그의 음악은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생생하다. 이 강한 생명력은 꾸준한 정진으로 이룰 수 있었다. 찬란한 역사와 견고한 위상 뒤편에는 성장을 좇는 변함없는 열의가 선명하게 자리한다.

한동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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