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시대다] 낡은 것을 부수고 새 것을 만드는 주체의 고뇌를 담다

<4> ‘정도전’ ‘육룡이 나르샤’

조선 개국 과정을 그린 사극 ‘정도전’(위 사진)과 ‘육룡이 나르샤’가 2014년과 2015년 연이어 방영됐다.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창안하는 주체의 투쟁을 그리면서 새로운 시스템을 열망하는 대중적 무의식을 담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각 방송사 제공

사극은 현실 정치를 강하게 투영하는 매체다. 2000년대 초 정조 등 개혁 군주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은 사극이 유행하더니, 2014~2015년에는 ‘정도전’(KBS), ‘육룡이 나르샤’(SBS) 등 여말선초의 혼란과 조선 개국을 담은 사극이 만들어졌다. “헬조선” “이게 나라냐”의 키워드로 이어졌던 사회적 기류와 새로운 시스템을 열망하는 대중적 무의식이 낳은 징후적 텍스트로 읽힌다.

조선왕조 개국은 그저 이성계의 정권 찬탈 과정이 아니었다. 고려 말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흥사대부가 주축이 돼 급진적인 사회 개혁을 통해 고려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만든 일종의 혁명이었다. ‘정도전’과 ‘육룡이 나르샤’는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권력 암투 서사를 벗어나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창안하는 주체의 고뇌와 투쟁을 보여준다.

‘학출’의 운동권, 혁명가로 거듭나다

정도전은 조선의 근간이 되는 토지와 법률제도는 물론, 경복궁 누각 이름까지 손수 지은 조선의 설계자였지만 이방원에게 숙청된다. 그가 창안한 조선은 신하와 제도로 왕권이 제한되는 관료정치 체제였기에 강한 왕권을 중심으로 군주정치 체제를 수립하려던 이방원과 양립할 수 없었다. 결국 조선 시대 내내 최고 사상범으로 남는다.

‘정도전’은 정도전(조재현)이 공민왕에게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려 국정 쇄신의 약속을 받아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권문세족 이인임(박영규)의 간계로 공민왕은 살해되고, 정도전은 귀양길에 오른다. 왕을 통한 개혁을 꿈꿨던 정도전은 좌절하고, 귀양지에서 기층 민중을 만나 혁명가로 거듭난다.

드라마는 정도전의 격렬한 투쟁과 성장을 보여준다. 드라마 초반 흥미를 끈 대목은 권문세족과 사대부의 대립이다.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권문세족과 달리 사대부는 지방 향리나 중소지주 등 중간계층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원-명이 교체되는 국제정세에서 권문세족은 친원을 주장하고 사대부는 친명을 주장했다. 즉 학파가 다르고 출신 계급이 다르며 외교 노선이 다르다. 사대부는 신념에 따라 단체행동도 불사했지만 노회한 이인임을 이기지 못한다. 이인임은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막히게 알아내 자기편으로 만드는 지략가다. 이런 대립은 현실 정치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드라마가 방송되던 박근혜 정권하의 노회한 보수 기득권 정치 세력과, 이념과 출신 계급과 통일 외교 노선을 달리하는 586 진보 정치 세력의 대립을 떠올리게 했다.

정도전이 귀양지에서 백성을 만나 각성하는 서사도 흥미롭다. 그는 친명정책과 성리학이 옳다고 확신해왔지만 백성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명분이나 이념이 아닌 경제나 안전 같은 민생이었다. 정도전은 9년간의 유배 생활을 통해 맹자의 민본 사상에 입각한 혁명을 꿈꾸게 된다. 조선 개국은 세습 귀족에 의해 장악됐던 시스템을 지식인(士)과 관료(大夫)가 뒤엎고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를 도입하는 혁명이었다. 정도전이 꿈꾼 나라는 (온전히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모든 토지가 나라에 귀속되고 사람 수에 따라 토지를 받으며 제도와 신하에 의해 왕권이 견제받고 민생이 정치의 중심에 되는 나라였다. 이런 서사는 학생운동 출신(학출) 운동권이 진짜 민중을 만나 각성하고, 혁명가가 되는 운동권 문학을 연상시킨다. 여기에는 박근혜 정권 당시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치 세력에 의해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대중의 열망이 투사된 것으로 읽힌다. (‘촛불 혁명’ 이후 정권을 잡은 세력이 열망에 부응했다고 보긴 힘들다.)

백성들이 공유한 ‘이게 나라냐’는 환멸

‘육룡이 나르샤’에서 ‘육룡’은 조선 건국의 주역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 이외에 이방지, 분이, 무휼 등 가상의 인물이다. 고려 말에 닥친 온갖 수난을 겪으며 조선의 건국에 기여한 이름 없는 백성을 대표한다. 드라마는 탐욕적인 권문세족, 그보다 더 악랄한 변절한 사대부, 수탈과 학살 속에서 “이게 나라냐?”고 탄식하는 백성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육룡의 신분과 욕망은 제각각이지만 ‘고려에 대한 환멸’을 공유한다. 드라마는 체제의 종말을 바라는 이들의 염원이 서로 다르게 작동하지만 혁명을 합이 맞춰지는 과정을 진진하게 그린다.

독창적인 인물도 색다른 재미다. 길태미(박혁권)의 즉물적이고 유미적인 모습은 화제가 됐는데, 성리학을 이념으로 삼는 사대부와는 사뭇 다른 고려 귀족과 무신정권의 퇴행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조선 건국이 단지 왕조가 아니라 지배이념을 바꾸는 문제였음을 설득해낸다. 개혁적 사대부였지만 권력의 공포를 맛보고 변절한 홍인방(전노민)의 뜨악함도 인상적이다. 자신의 지식과 신념을 뒤집어 활용하는데, 권문세족보다 악랄한 권력자가 된 그의 내면에는 분열이 존재한다.

드라마는 ‘이방원의 성장기’라 해도 무방하다. 우연히 정도전의 혁명론을 엿본 그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감탄한다. 그는 한발 먼저 혁명에 나서서 이성계를 끌어들인다. 둘은 혁명의 파트너였지만 노선과 속도에서는 척을 진다. 이방원이 아버지에게 종속되거나 반항하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를 상대화하고 활용하는 주체라는 점은 흥미롭다. 일찌감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방황을 통해 옳고 그름을 찾아 나갔으며 스스로 찾은 길에 아버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견인하고 노선이 어긋나자 아버지를 패퇴시킨다.

육룡 중 분이(신세경)는 유일한 여성이다. 가상의 인물인 그는 미천한 출신이나 역사적 대의를 각성한 혁명가이자 리더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정도전이 이끄는 혁명조직의 정보팀을 이끌다가 왕자의 난으로 조직이 와해 되자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섬으로 들어가 공동체를 만들고 살다 죽는다. 분이와 이방원 사이에는 로맨스가 있지만 분이가 거절한다. 둘은 동지애를 발휘할 뿐, 로맨스를 발전시키지 않는다. 분이는 자신의 신상이나 자존심보다 공동체의 리더로서 책임감을 더 중시하며 놀라운 여성적 리더십을 보여준다. 분이의 엄마 역시 쿨한 모성을 보여준다. 연향(전미선)은 어린 자녀와 헤어진 뒤 장성한 자식들을 만나는데 그는 엄마로서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이 이끄는 조직의 리더로서 냉철한 신념을 보여준다. 엄마와 딸, 아들이 모두 이념과 노선을 달리하는 조직의 일원으로 만나게 됐지만 이들은 자신의 삶과 조직과 노선에 가족을 끌어들이려 하지 않고 각자의 이상과 삶을 존중하며 마지막 순간에 느슨한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이성계, 다문화적인 존재

‘정도전’과 ‘육룡이 나르샤’는 이성계가 지닌 문화적 이질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성계는 고려 조정에 인맥이 없는 변방의 장수로 거친 함경도 사투리를 쓰며 그와 호형호제하는 이지란은 여진족이다. 이성계에게 원나라와 여진족과 고려의 문화가 뒤섞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의 고조부 이안사가 1252년 몽골군에 투항해 원나라의 벼슬을 얻은 후 4대 동안 원나라 벼슬을 하다가 공민왕 때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고려에 귀화했으며 그가 살던 지역은 오랫동안 여진족의 거주지였다. ‘정도전’은 “이성계가 고려를 ‘선택’한 자이기 때문에 충성심을 믿을 수 없다”는 권문세족의 말을 통해 이성계에게 고려인의 정체성이 약했음을 드러낸다. ‘육룡이 나르샤’는 아예 첫 회에서 이자춘과 이성계가 원나라를 배신하고 고려군에 투항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성계 가문의 원나라에 대한 부역과 배신의 역사는 단일민족 중심의 민족사관 입장에서 껄끄럽다. 조선 시대 내내 본관이 전주임이 강조됐고, 이안사부터 이자춘까지 4대를 왕으로 추존하고, ‘용비어천가’에서 이들을 ‘해동 육룡’(건국의 아버지)에 끼워 넣은 것은 모두 이성계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두 드라마는 이성계의 혈통적 얼룩을 과감하게 드러내는데 이는 단일민족의 강박에서 다소 자유로워졌음을 암시한다.

‘정도전’과 ‘육룡이 나르샤’는 이전의 민족사 중심의 궁중 암투물에서 볼 수 없었던 혁명의 시각을 보여준다. ‘헬조선’ 담론이 터져 나오던 2014-2015년 즈음에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세우고 싶었던 대중의 열망이 사극을 통해 표출된 것이리라. 마침내 2016년 ‘촛불 혁명’이 일어났다. 그때 세상을 뒤덮었던 혁명의 열기는 지금 어디로 숨었을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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