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미술] 거리로 나온 ‘벽돌의 정원’… 애프터서비스가 필요해

(18) 김승영 ‘누구나 마음속에 정원이 있다’

길거리 조형물은 꼭 그렇게 좌대 위에 수직으로 꽂혀있어야만 하는 걸까. 아파트 밖 대로변을, 사무실 주변 식당가를 걸어보라. 구상이든, 추상이든 십중팔구 수직으로 세운 걸 볼 수 있다. 현대미술에선 1960년대 이후 회화도 조각도 아닌 제3의 미술이 출현했다. 설치미술, 대지미술, 비디오아트 등은 지금 대세로 굳혀졌다. 그런데 한국의 거리 미술은 여전히 전통 장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김승영(57) 작가가 공원, 아파트 등 공공장소에 설치한 조형물은 그런 점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 그 흔한 수직의 형태를 벗어났다는 것만으로 새롭다. 지난 주말 김 작가 작품이 설치돼 있는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의 한 아파트를 찾아갔다.

‘작품’이 거리로 나왔을 때…앗, 돌발변수

서울 금천구 아파트에 설치된 ‘누구나 마음 속에 정원이 있다’ 의 연작. 아파트에 있는 만큼 좀더 개방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문을 달지 않았다. 최현규 기자

붉은 벽돌로 쌓은 둥근 벽체가 잔디 밭 위에 성채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게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백일홍 한 그루가 세상 구경하듯 담 너머로 목을 빼고 있는 것도 보기 좋았다. 작품명은 ‘누구나 마음속에 정원이 있다’(가로 6m, 세로 6m, 높이 3.2m). 문짝이 달리지 않은 출입구가 4개, 옆으로 누운 직사각형 창이 4개 있는 개방형 공간이었다. 창에는 투각한 것처럼 나뭇잎 모양 이미지를 달아 틈새로 내부가 슬쩍 보였다.

그런데 작품에 테이프가 빙 둘러쳐져 있는 게 아닌가.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뜻이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처음엔 애들이 드나들며 여기서 잘 놀았죠. 숨바꼭질하기도 좋잖아요. 한데, 거기서 남자 어른들이 담배를 피워대는 겁니다. 그걸 막느라 관리실에서 저리 했나 봐요.”

꼬마 형제 둘을 데리고 산책 나온 주부가 사정을 전해줬다. 개방형이지만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높이에 벽이 빙 둘러쳐져 있으니 적당히 숨어 피울 수 있는 장소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1만㎡ 이상 신·증축 건축물에 대해 건축비 0.7%를 미술품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한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0.7%법)에 따라 서울시 심의를 거쳐 2018년 말 세워졌다. 작품 설명이 친절하게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들만의 안식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현실적인 장소, 마음속의 풍경 또는 그리운 사람일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마음속의 정원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살면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던 생각이나 문장들을 벽돌에 새겨 넣었다. 작품에서 발견되는 문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감정 전달과 대화의 매개가 되기를 바란다.”

그랬다. 구조물 안에 들어서니 벽돌에는 듬성듬성 문장들이 있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넌, 지금]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모든 것은][지나가는 것]

사정에 따라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은 문장들이었다. 그러나 문장들은 벽체를 둘러친 테이프에 갇혀 있었다. 작가 의도와 달리 문장은 사람들에게 가 닿지 못하고 있었다.

뉴욕 할렘가…흑인 아줌마가 가르쳐준 예술

사진은 작업 세계의 모티프가 됐던 ‘피스 에어포트’. 작가 제공

김 작가는 홍익대 조소과를 나왔다. 졸업 후 누구나처럼 조각을 하던 그의 작품 세계가 달라진 것은 1999년 여름부터 1년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모마)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모마 PS1’에 한국 대표로 참여한 게 계기가 됐다. 선입견 때문에 처음 6개월 간 흑인 거주지 할렘가를 얼씬도 하지 않았던 그였다. 어느 날 불현 듯 그곳이 가고 싶어졌다. 할렘가 공원에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렸다. 시각장애인용 점자로 ‘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는가’라는 문장이 적힌 종이로 접었다. 공원에 놀러 나온 사람들이 하나둘 따라 접기 시작했다. 초록 잔디밭에 점점이 흰 새처럼 내려앉은 비행기.

“여기가 어디지”

“어디긴, 피스 에어포트(Peace Airport· 평화의 공항)지”

흑인 아줌마끼리 주고받는 농담을 듣는데, 순간 가슴에 파문을 일었다. “아, 굳이 사람 형상을, 추상 형태를 빚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종이비행기가 예술이 될 수 있는 거구나.” 2002년에는 레지던시에 함께 참여했던 일본 작가와 한국과 한일 공해상에서 만나는 ‘바다위의 소풍’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소통과 성찰은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고 관객 참여는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벽돌을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2001년 무렵부터다. 한 장 한 장 벽돌이 쌓여 만들어진 벽체 위에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을 영상으로 흘려보내는 작품을 ‘PS1 보고전’을 통해 한국에 선보이면서부터다. 벽돌은 개체가 모여 담이 되고 성이 된다. 개개인이 모여서 사회가 이루는 것처럼. 담과 성은 이쪽 편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저쪽 편을 차단하는 배제의 조형언어가 되기도 한다.


그 벽돌이 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바닥에 널브려져 있기도 하고(‘성찰)’, 벽 틈 사이로 마루가 깔린 실내 풍경과 함께 비로 쓰는 듯한 사운드가 흘러나오고(‘쓸다’), 허물어진 벽에 여러 개 스피커가 박혀 있기도(‘벽’) 했다.

저잣거리로 나온 작품 관리는 누가

한 어린이가 지난달 26일 경기도 이천 설봉공원에 설치된 김승영 작가의 작품 ‘누구나 마음 속에 정원이 있다’ 주위를 뛰어다니고 있다. 붉은 벽돌로 쌓은 원통 형태로 벽돌에는 작가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들 이름이 적혀 있다. 최현규 기자

미술관에서 전시됐던 벽돌 설치 작품은 저잣거리로 나오면서 성채처럼 둥근 벽체의 형식을 띤다. 경기도 이천 설봉공원 안에 ‘저마다 마음속에 정원이 있다’(2012) 원조 작품이 있다. 햇수가 흐르며 벽체 안에 심어놓은 나무는 무성해졌다. 벽 틈으로 푸른 가지가 고개를 내밀기도 했다. 외부 벽돌에는 작가의 마음속에 담겼던 이름들이 명멸하듯 박혀 있었다. 아내 이름도 거기 있다.

그런데 이 작품 옆에는 중국 작가의 흰색 철골 설치작품이 바짝 붙어 설치돼 있었다. 김 작가의 작품 설치 때는 없던 것이다. 이천시가 매년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을 하는 가운데 추후 구입해 설치한 게 분명해 보였다. 모든 작품은 자신만의 기운이 있고, 그 만큼의 공간을 확보해야 제맛을 낸다. 그걸 무시하고 딱 붙여서 설치하면 작품끼리 충돌해 고유한 맛이 상쇄된다.

다행히 금천구 아파트의 연작은 오롯이 돋보이는 곳에 위치했다. 문제는 아파트라는 주거 시설에 설치됐을 때 생겨나는 돌발변수다. 아파트 상가 카페 앞에서 만난 주민 박모(50)씨는 말했다.

“그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요즘 같이 험한 세상에.”

이 작품은 아파트 중정(중앙정원)에 있다. 중정은 아파트 주민들의 쉼터다. 이곳에서 자전가를 타는 아이들, 대화하는 주부들이 김 작가의 작품 안으로 자연스럽게 드나들었으면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면에서 서울 성북구 ‘성북동 거리갤러리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선보인 새 버전은 작품이 저자거리로 나왔을 때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 작가 스스로 보여주는 답 같다. 성북구립미술관은 하천이 복개된 쌍다리지구에 거리갤러리를 조성해 2018년부터 매년 길거리 개인전을 연다. 올해는 김 작가가 선정돼 ‘바람의 소리전’(내년 6월 26일까지)를 하고 있다. 이곳에 설치된 ‘누구나 마음 속에 정원이 있다’를 보자. 벽돌로 된 평상 형 쉼터와 벽돌 벤치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은 원래 있던 것이다. 작가는 이걸 작품처럼 끌어들여 바닥에 벽돌을 깔았다.

[노시산방] [매화와 항아리] [보화각]

김환기, 김용준, 전형필 등 성북동을 중심으로 활동한 문화예술인 관련 단어가 벽돌에 새겨져 있다. 이게 그의 작품이다. 문장을 읽다보면 주민들은 성북동에 대한 긍지와 애정이 솟을 지도 모르겠다.

다시 금천구 그 아파트 얘기로 돌아가자.

“제 작품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주위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지만 사후 관리 소홀로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후 관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의 보안이 이뤄져야겠지만, 그 전에 작가도 나섰으면 한다. 작품 설치 후라도 주민의 의견을 듣고 수정하고 보완해가는 과정, 거리로 나온 미술은 이렇게 애프터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궁금한 미술]
[궁금한 미술] 눌리고 짜부라져 길쭉한… 샐러리맨, 아빠의 초상
[궁금한 미술] 뒷모습이 더 아름다운 집… 혜곡은 뒤뜰에서 백자를 감상했다
[궁금한 미술] 1호 공원은 어쩌다 박카스女 출몰하는 노인 놀이터가 되었나
[궁금한 미술] 단아한 ‘하얀 큐브’가 품은 공중정원… 세상의 풍경을 끌어안다
[궁금한 미술] 水面 위에 누운 ‘노출콘크리트 접시’… 세상에 없던 공공미술
[궁금한 미술] ‘스틸 미러’가 빚는 빛의 잔물결… 만추의 풍광 품고 일렁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