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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악의가 빚어낸 엉터리 처방의 역사

[책과 길] 돌팔이 의학의 역사, 리디아 강·네이트 페더슨 지음, 부희령 옮김, 더봄, 432쪽, 2만5000원


“엉덩이에 연기를 뿜어줄까?”

황당하게 들리지만 18세기 영국에선 누군가의 엉덩이에 연기를 불어넣는 것이 허가된 소생술이었다고 한다. 매우 대중적인 소생술이어서 ‘담배 연기 관장 세트’가 제조됐고, 가정에도 판매됐다.

특히 런던 템스강에 빠진 익사자를 살리기 위해 이 세트를 사용했다. 익사자의 엉덩이에 관장용 관을 꽂고, 훈증기로 풀무질을 하는 방식으로 소생술을 진행했다. 풀무가 필요했지만 없을 때는 직접 입으로 연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당시엔 이 방법이 체온을 따뜻하게 하고 호흡을 자극한다고 믿었다. 의아한 것은 관장을 통한 소생술은 허용되면서도 구강 대 구강 호흡법은 “음란하다”는 이유로 외면 받았다는 점이다.

책 ‘돌팔이 의학의 역사’에는 이처럼 인류 역사에서 시행된 기괴하고 황당한 의술과 처방이 한가득 담겨 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이해가지 않는 치료법이지만 당대엔 널리 받아들여진 치료법으로 유명인도 문제의 치료법 피해자가 되기 일쑤였다.

일례로 피를 뽑는 방혈법에 희생된 유명인이 적지 않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사망 직전 이 치료를 받았다. 생의 마지막 주에 4파인트(0.4~0.5리터) 이상의 피가 뽑혔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영국의 찰스 2세 역시 사망 직전 남아 있는 혈액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바이런은 방혈법에 부정적이었으나 의사들의 재촉에 못 이겨 치료를 받다 숨졌다. 고열로 쓰러졌던 미국의 조지 워싱턴 역시 여러 차례 방혈법을 받은 후 사망했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도 방혈법이 쓰였다. 미국 건국 아버지 중 한 명인 의사 벤자민 러시는 조증 치료에 방혈법이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인체에 치명적인 물질들이 약물로 쓰인 경우도 허다했다. 잘 알려진 수은 외에도 안티몬, 비소, 금 등이 치료용으로 사용됐다. 이중 비소의 경우 발열, 위통, 속쓰림, 류머티즘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강장제로도 이용됐다. 견과류를 피임약으로 쓰거나 전염병을 막기 위해 진흙을 먹은 사례는 책에 등장하는 다른 사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수위가 낮다.

책을 읽다 보면 의학의 역사는 무수한 시행착오의 반복이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책을 추천한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추천의 글에서 “의학이 제 모습을 갖춘 건 100여 년밖에 되지 않으며, 그 이전까진 죽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을 무수히 죽였다”라고 적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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