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신라왕족 장식 머리부터 발끝까지 발굴

금동관·금동신발·금귀고리 착용… 경주 황남동 고분서 완전체 발굴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금동관과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등이 발굴로 노출돼 있다. 문화재청 제공

1500년 전 신라 고분에서 47년 만에 처음으로 금동관에서부터 금동신발에 이르기까지 피장자(묻힌 사람)의 착장품 일체가 발굴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5월 매장주체부(시신이 있는 자리)에서 금동신발과 금동 달개(瓔珞·영락) 일부가 확인됐던 황남동 120-2호 고분을 추가 발굴한 결과 이 같은 성과를 얻었다고 3일 밝혔다. 발굴 현장은 이날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언론에 공개됐다.

경주의 신라시대 적석목곽묘(구덩이를 파고 나무 덧널을 조성한 뒤 돌을 쌓아올리는 고분 양식)에서 피장자 착장품 일식이 출토된 것은 1973∼1975년 황남대총 발굴 이후 처음이다. 또 문화재청이 경주 적석목곽묘 피장자의 장신구를 전체 그대로 노출시켜 공개하는 첫 사례이기도 하다.

금동관을 쓴 피장자는 굵은고리귀걸이(太環耳飾·태환이식)를 양쪽에 하고 있으며, 금동신발을 신고 있었다. 금동관은 나뭇가지와 사슴뿔 장식을 세운 형태다. 나뭇가지 모양 장식의 끝부분에도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다. 현재까지 출토된 경주 지역의 금동관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금동관 아래에선 금으로 제작한 굵은고리귀걸이 1쌍과 남색 구슬을 4줄로 엮어 만든 가슴걸이(흉식)가 확인됐다. 그 아래 은허리띠의 양 끝부분에서는 4점이 묶음을 이룬 은팔찌, 은반지도 확인됐다.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는 1점이 출토됐다. 왼손 부분의 추가 발굴에 따라 천마총 피장자처럼 손가락 전체에 반지를 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위 사진은 전체적인 유물 노출상태를 보여주며, 아래 사진은 은팔찌와 구슬팔찌(노란색·남색의 작은구슬)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금동신발은 ‘ㅜ, ㅗ’ 모양의 무늬를 번갈아가며 뚫은 앞판과 달리 뒤판은 무늬를 새기지 않은 사각의 방형판으로 마감한 형태였다.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의 뒤꿈치까지의 길이가 176㎝인 것으로 보아 피장자의 키는 170㎝ 내외로 추정된다. 성별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굵은고리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으며 큰 칼이 아닌 장도를 지녔다는 점에서 여성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발굴을 진행한 신라왕경사업단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어떤 고분에선 팔찌만, 어떤 고분에서는 신발만 나오는 게 일반적인데, 이렇게 47년 만에 전체 착장품이 한꺼번에 출토돼 흥분됐다”며 “금동관은 금관보다 낮은 사회적 위세를 보여주지만, 금관은 지금까지 5개 정도만 출토된 만큼 이곳은 왕족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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