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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진인 조은산 선생께 삼가 드립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저는 최근 건전재정포럼 토론회에서 토론했습니다. 모두 문재인정부의 국가채무 증가를 비판했습니다. 토론회가 끝난 후 방청객 한 분이 우리를 향해 진인 선생보다 못한 사람들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학술적 토론만 하면 뭐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저 자신이 먼지보다 못한 비말 같은 존재인가, 자괴감에 젖었습니다. 신문사 원고 청탁을 받고 저도 이런저런 풍자로 여러 시간을 허비하였습니다. 한평생 무미건조한 논문만 쓴 학자로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차라리 저는 진인 선생께 국가채무 문제를 소상히 설명해 드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가채무는 조세, 지출조정과 함께 정부지출을 충당하는 방법입니다. 조세는 누군가의 현재 소득을 감소시키고, 지출조정은 누군가의 현재 혜택을 줄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세대가 그 재원을 부담합니다. 반면 국가채무는 현재 세대가 아무런 부담도 하지 않고 지출의 혜택만을 누리는 ‘신의 한 수’입니다. 수세기에 걸쳐 경제학자들은 누가 국가채무를 부담하는지 면밀하게 분석했습니다. 다양한 이설이 등장하였지만 한결같은 정론은 미래 세대가 부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현대통화이론(MMT)이라는 경이로운 이설이 등장하였습니다. 통화를 발행하여 정부지출에 충당하자는 것으로 좌파 정치인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통화남발의 가장 큰 장애는 인플레이션인데, 인플레이션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통화증발이 최고의 재원이라는 것입니다. 또 통화증발은 미래 세대에 아무런 부담도 떠넘기지 않는 환상적 방법입니다. 이 논리는 간단한 모형에서 기계적으로 성립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로 통합되고 기술 진보가 급격히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평균 물가로 표현되는 인플레이션 위험이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통화증발 여지가 국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해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 매우 위험한 이론입니다. 자칫하면 베네수엘라와 같은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통화이론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영국 등 기축통화 지위를 누리는 국가에서는 부분적으로 타당합니다. 그러나 이들도 무분별한 통화증발에 나설 경우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비(非)기축통화 국가들은 더 위험합니다. 통화증발 여지는 산업경쟁력, 금융시장과 외환시장 안정성, 재정건전성 등에 따라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버블, 외환시장의 불안정이 우려되는 한국에서는 위험성이 더더욱 높은 것입니다. 설령 현대통화이론이 성립한다 하더라도 국가채무가 미래 세대의 부담이라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 전염병, 자연재해, 글로벌 금융위기, 전쟁 등 정부지출이 불가피한 국가적 위기들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경제현상을 이해하려 하지만 그 전체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을 바탕으로 경제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국가채무는 미래 세대를 약탈하는 것이기에 미래 세대의 재량을 위해 그린벨트처럼 여지를 남겨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고령화로 복지지출과 국가채무 급증이라는 쓰나미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국가채무 증가에 방심하는 것은 파도타기 쾌락을 위해 쓰나미로 돌진하는 무모함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K재정’이라는 모범적 재정운영을 고민할 때입니다.

진인 선생! 제가 국가채무에 관심을 일으키고 싶어 공개적인 글을 쓰지만, 그 실례를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가채무 관련 논문과 개인적 문의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친절하게 답변을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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