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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지금 필요한 건 이웃사랑이다

김재중 사회2부 선임기자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사제와 수도자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신자들을 성당에 모아놓고 함께 미사를 드렸다. 신앙의 힘으로 병마를 이겨내겠다는 생각이었지만 환자 격리, 거리두기 등 전염병에 대한 상식을 무시한 성직자들의 오판으로 많은 신도가 희생됐다. 결국 흑사병은 중세 교회의 권위를 크게 떨어뜨렸고,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됐다.

코로나19 2차 대유행 위기 속에 한국 교회가 처한 현실이 중세 교회와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가 방역 활동을 방해하면서 8·15 광화문 집회를 주도하고, 일부 교회들이 대면 예배를 강행하면서 교회가 확산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조용한 전파가 지역사회에서 5월 초 이후 계속 있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계기로 증폭하느냐가 매우 중요할 수 있다”며 “발생 규모, 시기 등으로 볼 때 사랑제일교회, 광복절 서울 도심 집회가 핵심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밝혔다.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피해를 입는 이웃들의 행복추구권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서울 장위동 전통시장 상인들이 사랑제일교회를 상대로 영업 피해에 대한 구상권 청구 소송에 나선 상황이다. 물론 예배가 개신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김태영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은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교회 지도자 간담회에서 “신앙을 생명같이 여기는 이들에게는 종교의 자유는 목숨과 바꿀 수 없는 가치다. 교회 본질인 예배를 지키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실 많은 교회가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고 소모임이나 식사를 하지 않는 등 방역에 협조하고 있다. 다만 일부 교회의 일탈로 전체 개신교가 지탄받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극히 일부의 몰상식이 한국교회 전체의 신망을 해치고 있다”고 개탄했다. 대면 예배를 영원히 금지하겠다는 게 아니라 위기에 처한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잠시 멈추자는 것이다.

개신교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국 50~60곳의 교회에 최근 ‘코로나19 확산, 교회가 죄송합니다. 세상과 지역사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교계 석학으로 평가받는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도 ‘전광훈 사태와 한국교회’라는 글에서 “예수님은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의 원망을 들을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화해한 다음에 와서 제물을 드리라’고 하셨다. 하물며 이웃의 생명이 조금이라도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면 훨씬 더 조심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썼다.

대면 예배만 고집할 일도 아니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근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성경에서 대면으로 예배를 보라는 근거는 없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어차피 비대면”이라며 “사도 바울이 멀리 떨어져 있는 교회, 신도들에게 편지를 보냈듯이 지금은 떨어진 채로 카톡이나 이메일로 서로를 격려하고, 고립되지 않도록 모색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특히 개신교가 일부 목사들의 정치적 편향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성명을 통해 “극우적 정치이념과 근본주의적 믿음이 결합한 ‘전광훈 현상’은 한국 교회 민낯이었다”며 “한국 교회는 즉각 전 목사와의 관계 절연을 선언하고 그를 교계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고비 때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해온 개신교가 사회적 책임을 되새기고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지금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이웃을 외면하고 지나가 버린 사제나 레위인보다 상처를 싸매주고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준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웃사랑이 필요한 때다.

김재중 사회2부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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