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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풍경화] 다만 ‘멈춤’으로 지키는 오늘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최형. PC방 하는 승배는 꺼이꺼이 울음을 터트립디다. 혜란 누님 아시죠? 방이동에서 노래방 하는. 여장부로 소문난 그 누님도 글쎄 조용히 눈물을 훔치더군요. 숨만 쉬고 있어도 나가는 돈이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국밥집 하는 형철이 사정도 비슷해요. 아시다시피 밤 장사가 만만찮은 업종인데 9시가 되면 문을 닫아야 하다니, 모르긴 해도 매출이 반의 반 토막 났을 겁니다. 커피숍 하는 정호 형님께는 괜히 송구해 찾아가지도 못했습니다.

지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꿈이라면 모질게도 기나긴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겠지요. 회사를 당장 때려치우니 마니 늘 구시렁거리던 경민이 녀석 있죠? 지난달 만났더니 이런 때에 직장이 있는 것만 해도 어디냐고, 월급 제때 나오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라고 하더군요. 몇 달 사이, 우리 주위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래요. 편의점 장사는 잘되냐, 좋지 않은 이야기가 언론에 많이 들리던데 너희 편의점은 어떠냐, 지난 몇 년 사이 형님이랑 선후배들이 걱정 많이 해주셨잖아요. 그때만 해도 어쩌다 편의점을 차려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투정했는데 지금은 그나마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어요. 편의점 역시 상권에 따라 굉장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많지만 PC방, 노래방, 식당만큼은 아니니까요.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눈물겨운 나날입니다.

최형. 상황이 이렇게 되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도 않아요. 좀 진정되는가 싶더니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 탓하고 싶지도 않아요. 사람이 지독한 절망에 빠지면 비난할 기운마저 사라지는 법이죠. 지금 주위 자영업자들이 그래요. 임대료와 인건비를 걱정했던 수개월 전 풍경이 오히려 여유롭게 느껴질 정도네요. 지금은 생과 사를 걱정하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어서 빨리 지독한 이 악몽에서 빠져나갔으면 좋겠다, 오직 간절히 그 생각뿐입니다.

형님이 이 편지를 읽고 계실 시각은 주말 오전쯤이겠군요. 누군가는 외출을 준비하며 입고 나갈 옷을 고민하고 있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여행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누구라도 붙잡고 부탁건대 제발 이번 주말만은 모든 일상에 ‘정지’ 버튼을 눌러주길 바라는 마음에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 있어도 딱 한 주만 참고, 먹고 싶은 음식 있어도 이틀만 참아보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이미 예약돼 있는 곳이 아니면 부디 다음을 기약하는 것은 어떨까, 무릎을 꿇고라도 부탁하고 싶습니다.

최형. 문득 우리가 대학 시절 나지막이 불렀던 ‘작은 연못’이란 노래를 떠올립니다. 깊은 산 작은 연못에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살았는데, 서로 싸워 한 마리가 죽고, 여린 살이 썩으며 물도 썩어 다른 한 마리도 결국 죽고 말았다는. 지금은 맑은 마음으로 서로를 지켜줘야 할 때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멈춤’으로써 지킬 수 있는 오늘입니다. 그 최소한의 약속을 함께 지키는 따뜻한 주말 되시길.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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