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의학 칼럼] 관계성은 나의 인격 비추는 거울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사무엘상 19장 10절 말씀이다. 오늘 본문은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울과 다윗의 갈등 관계는 성경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 말씀으로 관계성은 감동을 주는 인격에 달려 있다는 내용을 묵상해보자.

우리에게 최고의 감동을 주신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배와 그물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돈과 명예를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따른 건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께 감동받아 복음을 전하다 죽임을 당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 안드레도 마찬가지였다. 야고보는 목이 잘려 죽었고, 요한은 차가운 밧모섬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빌립은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져 죽었다. 모두 예수님 때문에 목숨까지 버렸다. 왜 그랬을까. 모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맺어진 관계성의 뿌리에는 감동이 있었다.

신앙은 감동으로 맺어진 관계다. 성령에 감동해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위대한 일에 감동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직위나 신분은 사람의 몸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은 못 움직인다. 마음을 움직이는 건 감동이다. 즐거움을 주는 사람은 재치나 유머가 있으면 된다. 감동은 줄 수 없다. 인격이 필요하다.

미국의 진 에드워드 목사는 ‘세 왕 이야기’라는 책을 썼다. 세 명의 왕은 사울과 다윗, 압살롬이다. 이들 중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은 오직 다윗뿐이었다. 다윗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를 감동하게 했다.

다윗이 이런 능력을 갖춘 건 깨어짐을 경험하며 인격이 성숙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했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악신이 들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도 인정하며 두 번이나 그의 목숨을 살려줬다.

우리는 모두 자기 정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고 말한다. 다윗은 그러지 않았다.

다윗과 사울은 원수지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윗이 자기 정의만으로 판단하면 사울은 틀린 인간이다. 사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사울은 악했다.

우리 모습을 돌아보자. 우리는 모두 자신을 사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윗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다윗이라 생각하면서도 늘 마음속에 나를 핍박하는 원수를 미워하며 산다. 결국 다윗과는 다르다. 사울과 더욱 비슷한 셈이다. 미움과 증오마저 하나님께 맡길 수 없다면 우리 모두 사울의 인격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매 순간 다윗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옳아.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자야”라고 말씀해 주셨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침묵하고 지켜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연약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다윗은 자신이 옳은지 그른지 스스로 정의 내리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마저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 믿음을 지키며 살았을 뿐이었다. 바로 그런 다윗의 인격이 하나님과 사람을 감동하게 했던 것이었다.

관계성은 나의 인격을 비추는 거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격은 반드시 관계성 안에서 자기 얼굴을 드러내게 돼 있다. 남을 탓하기 전 먼저 자신의 인격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인격을 갖출 때 우리의 관계성은 빛나게 될 것이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인격으로 주위의 모든 분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시길 권한다.

이창우 박사(선한목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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