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손영옥의컬처아이

[손영옥의 컬처 아이] 조영남 작품 팔린다고 배 아픈 이들에게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그림까지 그린답시고.”

가수 겸 방송인 조영남씨는 ‘비호감’이다. 방송에서 보인 거만한 말투, 이혼한 전 부인을 불필요하게 거론하는 방식 등이 이유로 꼽힌다. 미대를 졸업한 뒤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친구는 여기에 이런 이유를 보탰다. 기실, 이게 그의 비호감 캐릭터에 정점을 찍은 요인이지 싶다.

그는 인기 방송인이라는 거대한 문화 자본 위에 올라타 부캐(부캐릭터)인 화가로 손쉽게 입성했고, 그림이 팔리기까지 했다. 그러다 “바쁜데 전시 요청은 많이 들어오고, 송○○한테 그대로 그려오라 했다”가 사기죄로 기소됐다. 지난 6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5년을 견디는 일은 쉽지 않았을 거 같다. 판결 이후 충남 천안과 서울에서 연이어 개인전을 하는 등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을 ‘아마추어 화가’ ‘미술 애호가’라고 거듭 확인했다. 8일 서울의 개인전 장소인 피카프로젝트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다. 갤러리 측은 “가수 겸 문필가, 이제는 한국의 팝아티스트”라고 소개했지만 말이다.

‘조영남 대작 사건’은 우리나라 저작권법에 획을 긋는 소송이다. 한국 저작권법은 미국 영향을 받아 창작적인 ‘표현’만을 보호하고 ‘감정’이나 ‘사상’ 그 자체는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는다. 소설 ‘텐산산맥’ vs 드라마 ‘까레이스키’ 소송에 관한 2000년 대법원 판결에서도 원칙은 지켜졌다. 연해주 이민 한인들의 애환을 그린 소설 ‘텐산산맥’의 저자 백○○씨가 역시 연해주 한인들을 소재로 한 드라마 ‘까레이스키’를 방영한 MBC를 상대로 드라마 내용이 자신의 소설과 흡사하다면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백씨는 최종 패소했다. 저작권법 보호 대상은 문자, 음(音), 색 등 표현 형식이지 아이디어에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영남 대작 사건은 그런 점에서 유럽의 기류인 아이디어 보호 쪽으로 휙 돌아선 결정이라 할 수 있다. 대법원은 “미술품 작품 가치 평가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사법 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판시했다. 조수에게 ‘대작’을 시켰지만 아이디어를 낸 조씨를 작가(저작권자)로 본 2심을 지지한 것이다.

소송 결과를 아마추어를 자처하는 조씨가 ‘전유’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는 “나이가 드니까 (목)소리도 안 나오고 이제는 그림 그려서 먹고 살아라, 그래서 국가가 화가로 5년간 키워준 거 같다”고 말했다. 판결이 가져다준 자신의 상품성을 알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엔 20대 시절부터 최근작까지 “취미로 그렸다”는 50여점이 나왔다. 전 국민이 즐기지만 일제 잔재라 다루기 껄끄러운 화투를 회화 소재로 끌어온 용감성(혹은 독창성) 말고는 새로운 것은 없었다. 현대미술사를 이끈 서구 작가들의 작품 이미지와 기법의 짜깁기, 초보적인 ‘번안’의 느낌이 강했다. 개념미술을 이끈 마르셀 뒤샹의 변기 작품 ‘샘’을 의식한 듯 요강에 금칠을 한 작품을 내놓은 것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아마추어의 세계가 맞아보였다.

그럼에도 전시장에 나온 작품은 다투듯 팔리고 있으니 “억울하면 유명해봐”라고 외치는 작품들 같았다. 자본주의에서 유명세는 곧 상품성이다. 서예가가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붓글씨가 경매에서 팔리는 이유다. 혹 투자의 관점에서라면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한 컬렉터의 선택을 뭐라 할 일이 아니다.

유명세만으로 팔린 작품이 한국 현대미술사에 편입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전직 대통령 박정희의 글씨 낙찰 소식이, 방송인 조씨의 전시 기사가 언론사 문화면이 아니라 인물면에 소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유명 인사 조씨 덕분에 널리 알려진 이번 판결이 전체 작가들의 창작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데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