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선될 것… 막말에 가렸지만 선거전에 강한 면모”

[인터뷰 사이] 2016년 트럼프 승리 맞힌 김준석 교수

미국 콜로라도에 체류 중인 김준석 교수가 멜라니아 트럼프에 관한 책 ‘그녀의 협상 기술’을 펼쳐보고 있다. 김 교수는 “현지에서 느끼는 미국 대선의 열기가 과거만큼 뜨겁지 않다”고 했다. 특히 미국인들은 집 앞에 ‘야드 사인’이라 부르는 표지판을 꽂아 정치적 지지를 드러내는데, 올해는 ‘바이든 2020’ ‘트럼프 2020’ 같은 문구가 드물다는 것. “코로나19 사태와 인종 갈등 때문에 하루하루 현실의 위험이 크고, 선거운동도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준석 교수 제공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트럼프가 이길 것으로 봅니다. 민주당은 이번 대선을 트럼프에 대한 심판으로 규정해 반(反)트럼프 세력을 규합하려 합니다. 그런데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라 해도 이들을 바이든 지지로 돌리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미 트럼프를 찍을 사람과 찍지 않을 사람은 정해졌다고 봅니다.”

미국 정치를 전공한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대부분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이야기할 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한 몇 안 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연구년을 맞아 콜로라도주립 덴버대학교의 방문학자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그에게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2개월도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에 대한 전망과 분석을 들었다.

-2016년 대선 때는 선거 전날까지 뉴욕타임스 등이 ‘힐러리 당선 확률 95%’ 같은 보도를 내놓았는데, 어떻게 트럼프가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습니까.

“제가 보기엔 힐러리는 생각보다 약한 후보였고, 트럼프는 생각보다 강한 후보였습니다. 힐러리는 경력은 화려하지만 참신함이 없었습니다. 힐러리의 슬로건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는데, 왜 자신이어야 하는지 납득시키지 못했습니다. 특히 20, 30대 청년들에게 힐러리는 낡은 정치인이었죠. 자신이 태어났을 때 대통령이 빌 클린턴이었는데, 30년 후에 그 배우자가 대통령으로 나온다는 거였으니까요.”

-이번 대선도 여론조사로는 조 바이든이 앞서고 있습니다.

“여론조사가 틀린 사례는 브렉시트 등 꽤 많지 않았습니까? 또 우리가 접하는 주요 외신이 CNN, 뉴욕타임스 등인데, 이들의 편향성 문제가 있습니다. 트럼프 주장처럼 이들이 좌편향됐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매체들의 본사는 뉴욕, 워싱턴 같은 동부 대도시나 캘리포니아 등 서부에 집중돼 있고, 당연히 그 지역의 생각을 담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이들을 미국 전체의 목소리로 착각합니다. 2016년 트럼프가 승리한 곳은 중남부 지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올해 예상은 어떻습니까.

“이번 선거는 진영 간의 대결이자 동원 선거가 돼버렸습니다. 트럼프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 중 누가 투표장에 더 많이 나오느냐가 판도를 결정지을 겁니다. 이런 구도에선 트럼프처럼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진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막말과 기행에 가려져 트럼프의 선거 실력이 평가절하된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트럼프 지지자냐고 오해를 사곤 하는데, 트럼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지난 대선 때도 판세를 잘못 읽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이번 대선의 변수는 역시 코로나19와 경제 상황일까요? 인종차별 반대 시위도 되레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가 언제 회복될지, 코로나의 확산세가 멈출지,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인종 갈등은 곳곳에서 터지는데 트럼프는 흑인 희생자들에게 애도조차 표한 적이 없습니다. 정부의 실패가 이 정도로 쌓이면 그 책임은 대통령에 가고, 정권이 교체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재선을 예측하는 건 트럼프의 코로나 대응 실패에 많은 미국인이 분노하지만, 그렇다고 바이든이 된다고 해도 더 잘하리라는 확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쟁점은 코로나와 더불어 대도시의 소요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일 겁니다. ‘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를 내건 일부 시위대의 약탈과 방화가 이어지면서 트럼프는 치안에 대한 불안감을 선거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29일부터 시작되는 TV토론에서 예비선거 동안 여러 실언을 했던 바이든이 얼마나 잘 버티느냐도 변곡점이 될 겁니다.”

-트럼프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교수님이 트럼프는 ‘충실한 공약 이행자’이며, 과도하게 폄하돼 있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2018년 미국정치학회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꼴찌라는 평가를 받지 않았습니까.

“미국 정치학자의 시각에선 대통령다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인종 간 화합에 관심도 없는 인물에게 좋은 평가를 할 리 만무합니다. 트럼프가 충실한 공약 이행자라는 건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는 겁니다. 트럼프의 외교는 혼란 그 자체지만 적어도 국내 정치에선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세제 감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FTA 개정, 이민 제한, 환경 규제 완화 등 보수진영이 원하는 것들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공약을 잘 지켰다고 해서 훌륭한 일을 했다는 게 아니라, 보수 성향의 부자들과 중산층이 트럼프를 지지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트럼프 지지자가 마치 인종차별주의와 총기 옹호에 매몰된 광신도들만 있는 것처럼 봐선 안 됩니다.”


-바이든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바이든의 약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바이든은 대통령으로서의 비전이나 구체적인 그림을 유권자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째, 트럼프와 바이든 둘 다 70대인데, 트럼프는 외부 활동이 왕성합니다. 코로나를 이유로 온라인 선거운동만 하던 바이든이 최근 경합주 선거운동을 시작하긴 했지만 건강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긴 부족합니다. 셋째, 트럼프가 행보마다 논란을 불러일으켜도 카리스마 있는 인물임을 부인할 순 없습니다. 바이든은 좋은 동네 할아버지 같은 이미지로 개성이나 매력을 보이지 못합니다. 사람은 좋아 보이는데, 일을 잘 해낼 것인지에 대해선 걱정이 있는.”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가 전체 유권자 투표에서 300만표를 이기고도 선거인단 수에 밀려 패배했고, 같은 사례가 2000년 앨 고어를 포함해 다섯 번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라면 선거제 개정 이야기가 나왔을 텐데, 미국민들은 그들의 독특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요.

“실제로 불합리한 측면이 많죠. 그런데 미국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미국이 젊은 나라라는 착각입니다. 미국은 200년 전에 만들어졌고, 지금도 그 당시의 헌법을 큰 변화 없이 운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입니다. 학교에서부터 미국인들은 건국 선조들과 그 유산을 신성하게 받아들이도록 배웁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뿌리 깊은 탓에 정치인들은 물론 유권자들도 제도를 바꾸는 데 소극적입니다. 또 선거제를 바꾸려면 광범위한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전쟁 같은 정파 간 대립 구도하에선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편 투표의 공정성을 빌미로 트럼프가 선거 결과 불복을 시사하는 언급을 했습니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요.

“트럼프가 대선 불복론을 불러올 수 있는 발언들을 하는 이유는 패배 자체에 대한 강한 자기 부정이자 지지층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질 수 있다는 생각의 여지를 제거함으로써 지지층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거죠. 트럼프도 결과에 불복했을 경우 감당해야 할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테고, 그대로 승복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트럼프와 바이든 중 누가 더 한국을 압박하리라 보십니까? 북한 비핵화, 주한미군 감축, 주한미군 분담금 문제 등은 어떻게 될까요.

“트럼프 2기는 지난 4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무역 불균형을 내세워 미국 물건을 더 많이 사도록 요구할 겁니다. 외교적 업적을 만들기 위해 북한 문제에 더 힘을 쏟을 수도 있지만, 아예 외면할 수도 있지요. 바이든은 오바마 정부의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겁니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고, 중국 견제 수단으로 한국과 일본을 내세울 것입니다. 한·미·일 삼각동맹의 가장 큰 명분은 북한의 핵 위협입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가 강해질 겁니다. 우리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더 치열한 줄타기를 해야겠지요. 트럼프와 바이든 누가 되든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할 것으로 봅니다.”

-미국 대선이 우리나라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있을까요?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진 대통령, 매력적이지 않은 야당. 미국 대선이 전개되는 모양새가 우리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 대선과 우리 정치가 상당히 닮은 면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미국 정치가 민주주의의 모범사례로서 시사점을 주었다면, 현재는 배울 만한 점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정치가 이념을 핑계로 하나의 무리짓기로 귀결되고, 상대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지는 것은 대단히 우려됩니다. 이런 문제는 선거 한 번으로 해소될 수 없고, 해결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대선을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이번 대선은 미국의 방향을 진단하는 시험지 역할을 할 겁니다. 2008년 미국은 오바마를 선택했습니다. OECD 국가 중 백인이 다수인 나라에서 소수 인종 출신 지도자를 선출한 국가는 없었습니다. 오바마의 등장을 역사의 전환으로 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8년 후 그 반작용으로 트럼프가 등장합니다. 트럼프는 철저하게 미국의 이익을, 그리고 백인의 이익을 대변했습니다. 2020년 선거는 트럼프 4년이 일탈의 시기였는지, 오바마 8년이 예외적인 시기였던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줄 겁니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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